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신명기 22:23-30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
며칠 동안 인간의 성문제를 바라보면서 내린 결론은 4,000년 전에도 오늘과 동일한 문제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인간의 성품은 한결 같았다. 어제나 오늘이 동일했다. 이 시대가 추구하는 성문화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성은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라는 사도바울의 선언이 오늘날도 유효함을 보는 것이다.
오늘은 유부녀와의 동침, 그리고 들에서 일어난 성범죄 그리고 성 안에서 일어난 성에 관한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당시 사회를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해서 선택한 법이었지만 사도바울에 의하면 모든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큰 죄, 작은 죄를 구분하여 형량을 정하지만 하늘법정은 모든 죄에 대해서 예외 없이 죽음을 선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린도전서 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쫓아 온 애굽 군사들을 피하도록 홍해를 가르셨다. 넘실거리는 바다 속을 통과한 것이 합동세례식이었다고 말씀하신다. 그곳이 바로 심판의 자리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마른 땅이었지만 애굽 군사들에게는 합동장례식이었다. 죽음과 삶이 나누어지는 현장이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오늘 본문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모든 죄는 죽음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신다. 은혜의 시대에 오늘 본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생들에게 단 하나의 길을 제시하신다. 피할 길을 내신다. 좁은 길이다.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다. 십자가이다.
범죄한 인간을 향하여 던지는 돌의 무게는 자신들의 죄의 무게와 정비례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돌에 새겨져 있다. 모든 인생들을 향하여 던지는 질문이다.
‘쳐 죽일지니라.’
오늘도 나는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간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신다. 내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마음만 있다면 그곳에 쉽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나야만 했듯이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보혈을 지나야만 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수많은 성문제가 이슈화되는 현장에서 나 역시 피해갈 수 없다. 오늘도 내가 주님이 필요한 이유이다. 투석형 앞에서 떨리며 숨죽이고 있던 여인을 향해서 땅에 글을 쓰셨다. 그리고 일어나 모든 사람을 향하여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고 하셨다. 어른부터 시작해서 어린아이까지 그 손에서 돌을 다 버렸다. 그리고 돌아갔다고 했다. 이어진 주님의 판결은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한마디였다.
집행유예를 선고하셨다. 자신의 십자가의 피 값으로 보석금을 지불하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