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욥기 7장입니다.
욥은 그의 인생 전반에 대한 불만을 쏟아 놓습니다.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헛된지,
얼마나 살고 싶지 않은지, 얼마나 무의미한지에 대한 모든 불만을 토로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왜 사람에게 그토록
관심을 가지시는지, 왜 매 순간 시험하시는지를 질문합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니 하나님도 나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욥은 말합니다.
대학에서 실존주의를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욥기를 읽었습니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한낱 주저리는 프랑스의 지식인일 뿐이었지만 욥은 진정한
지식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병든 육체의 고통과 자식들의 죽음에 대한 정서적인 트라우마와성취했던 모든 것이
무너진 것에 대한 상실감을 잘 알고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정신적인 공백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으며
그가 당한 고통의 모든 장면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욥은 가치도 목적도 의미도 없이 매일 고통을 느끼며 눈을 뜨고 무서운
꿈을 꾸게 되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들과는 다르게 욥은 스스로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욥이 여러 달의 고통과 고달픈 밤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것을 보고(3절)
나는 그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5년의 고통의 세월을 보냈고 난후 욥과 같이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라는 말을 똑같이 했었습니다.(7절)
욥은 “그런즉 내가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라고 했는데 저 역시도 하나님을 향해 소리지르고 하늘로 돌을 던지며 욥과 똑같은
언행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불평을 할 수 있었는지요!
최근에 교장 모임에서 저는 한 부유하고 성공했지만 불신자인 한 교장선생님에게 저의 욥과 같은
고난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져가셨고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하셨다고 말
해 주었습니다.
그는 “밑바닥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밑바닥은 다른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저와 하나님을 뜻하지요.”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는 약간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밑바닥은 하나님이시죠. 바닥에 부딪혔을 때, 그렇게 하나님과 마주치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지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오늘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과 그것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아이들은 교장선생님과는 다르게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저의 경험을 통해서 제가 배운 것은 만약 제가 하나님을 조금 덜 사랑했다면 저는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지도 돌을 던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믿음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이었다면 저는 아마도 나에게 벌어진 모든 사건을 우연으로 치부하고 넘겨 버렸을 것입니다.
고난의 사건 속에서 저는 하나님을 아주 많이 믿었고 아주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고난은 해석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비참함을 뛰어 넘는 또 다른 5년의 시간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아주 많은 관심이 없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깊은 상실감을 느끼는 않았을 것입니다.
#51211;은 시절 커다란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저를 믿음의 자리로 불러주셨습니다. 25년이
지나서 돌이켜보니 저의 영적인 여정이 젊은 시절의 고난을 이제는 식은 죽 먹는 것과 느끼도록
인도해 주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제가 경험한 밑바닥은 곧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곳까지 내려간 것이 싫었지만 하나님이 나를 그곳으로
내려가게 하신 것은 기뻤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징표입니다. “아침마다 권장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는 것”(18절)
이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축복인 것입니다.
주님! 당신이 인도하신 밑바닥에 항상 서있게 하옵소서. 당신이 나의 구원의 반석이시며 나의 삶의 반석이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당신을 향해
진실되게 하옵소서. 제가 길을 잃고 다른 길을 가려 할 때마다 회개하여 돌이키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