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신명기 21:15-23
“편애하지 마라”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신명기 21:17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관심과 사랑이 어떠한지는 오늘 본문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인간사라는 것이 사랑과 애증의 중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한 가정의 편애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마음이 가는 데로 사랑하는 것이 편애라 할 것이다. 마음은 그럴지라도 상속권에 있어서는 법을 정하셨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개인적인 일까지도 규정으로 정하셨다. 17절에 ’반드시‘라는 단어를 주목하라.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세세한 것까지 아니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일일이 상관하시길 원하신다. 그것이 바로 부성애일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간간히 비뚤어질 때면 잔소리가 늘어가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자식 삼아 오늘도 말씀하고 계신다.
편애하지 말라고 하셨다. 인간의 감정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참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하기에 율법으로 차별을 막으신 것이다. 그리고 비뚤어진 자식에 대해서 공동체가 그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신다. 그것은 한 사람의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져야할 공동책임이라는 것임을 摘示(적시)하신 것이다. 사회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죄악들에 대해서 나만 깨끗하면 된다는 개인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씀이라 하겠다. 개인의 죄악을 함께 고민하고 대처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공동운명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실제를 듣고 있다. 그리고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해왔던 400년의 꿈이 현실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가나안으로의 여행에 기대감으로 들떠있었을 것이다. 가나안 땅에서의 삶이 그려지고 구체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광야에 바람이 분다. 날리는 흙먼지를 바라보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동경은 이제 꿈이 아니라 비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삶은 개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곳임을 가르치신다.
하나님 나라는 나의 나라이기 전에 우리나라인 것이다.
오늘 나는 이런 질문으로 묵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의 가나안은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가?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고 있는가? 이 두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며 늦은 묵상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