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신명기 20:10-14
“포로 된 여인”
어제는 의문의 살인사건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공동체가 그 책임을 질 것을 요청하신다. 이것은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죄악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문의 죽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로 간주하고 속죄제를 드린 것이다.
공동체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모두가 책임을 져야만 했다.
에스라가 그랬고 느헤미야가 그랬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무릎을 꿇었다.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메시지를 깨달은 그는 지금 겪고 있는 이스라엘의 포로생활과 예루살렘의 패망의 원인이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 함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일상의 삶을 멈추었다. 음식을 먹기를 중단하였다. 슬픔과 참회의 마음으로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작정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민족의 죄악을 가슴에 품고 기도한 것이다. 다니엘의 가슴에 이스라엘이 들어왔다.
오늘은 포로 된 여인을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영원하신 분이시다. 시간의 주인이시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수식어처럼 부르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오늘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아직 나라도 세워지기 전이었다. 타인의 눈으로 보면 40년간 광야에서 떠돌던 민족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전쟁에서 승리를 말씀하셨다. 포로 된 여인을 향한 남자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방여인이었다. 전리품처럼 얻은 여인이었다. 당시에는 노예가 물건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가련한 여인을 바라보신다. 하나님께서는 한 연약한 여인을 돌보시기를 자청하신다.
한 달 동안 부모와 이별을 위해 애곡할 시간을 주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야 하는 비련의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포로이지만 정욕의 대상으로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존중히 여겨 가족으로 받아들일 절차를 밟게 하신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래야만 했다. 무정한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을 무엇인지를 가르치신다. 기다림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였다. 한 여인의 아픔을 보듬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서 하나의 가정을 세우신다. 혹이라도 서로간의 문제로 인해 이혼의 경우에도 그를 팔지 못하게 하셨고 자유를 허락하신다.
이다지도 세심하게 배려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공동체가 성결하고 배려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신 것이다.
우리가 그랬다. 이방인이었다. 죄의 포로 된 자들이었다. 들에 버려진 자처럼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한 우리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신랑이 되시기를 자청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던지셨다. 십자가의 사랑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