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8:4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발닷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발닷이 죄를 언급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언급하며 욥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짝 정죄의 뉘앙스가 있는 듯 합니다. 내 삶의 결론으로 온 고난인가, 하나님께서 테스트하시는 것인지를 나누는 것이 과연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 묵상을 했습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둘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를 옳고 그름을 판단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 같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겪고 있는 고난이 내 죄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내보이기 싶은 것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묵상을 하다 보니 어제 다윗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시므이의 저주를 자신의 죄의 결과로 생각하고 여호와께서 저주하라고 하셨다고 먼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원통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주실 것이라는 마음 자세… 고난을 당할 때 다윗의 이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 사건을 두고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입장이 다 다를 것입니다. 재혼의 과정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각자 입장이 있겠지만, 나는 내 삶의 결론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종 음란을 즐기며 생각 없이 살다가 이혼한 것이 큰 죄이기 때문에, 적어도 나에게는 이 사건이 테스트가 아닌, 있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감사한 것은 그냥 힘든 사건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조금은 키워가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내 삶의 결론으로 온 사건이던 욥처럼 하나님의 테스트이던 간에 사건을 통해 영적으로 깨닫고 배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살면서 사건은 늘 있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겪으며 대응해나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사건을 말씀으로 제대로 해석하여 영적 지경이 조금이라도 넓어지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인생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