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욥은 자신의 인생의 그늘과 그 끝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다.
욥에게 주어진 극심한 고통을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여러 달 째 허락하고 계시고,
욥의 탄식과 낙심에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 욥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일까...
우리집에도 많은 사건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었다.
2013년의 마지막 날, 집에 여자를 데려온 아빠를 목격을 시작으로
2014년의 시작이 바람사건으로 생긴 나의 불안증치료, 엄마의 맹장수술, 대상포진, 우울증,
친척들의 재산사건, 재판 등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당시 엄마는 성당에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었다.
나는 반대로 사건들을 겪으며 이 세상에 하나님은 없다고 있을 리가 없다고 울부짖었었다.
그러나 교생을 나가면서 말씀이 들리며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엄마와 어제 저녁에 대화를 하며 지금 그 일들을 돌아보며 느끼지만 그 사건들은
우리집에 꼭 있어야 했던 일이고 우리가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음을 인정했다.
우리집에 걸린 재판도 이번주가 마지막이었다. 결과는 내 임용시험 바로 전날 발표가 난다.
엄마는 변호사도 없이 재판을 진행했고, 우리가 패소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까지도
경매에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결과가 어떠하든지 엄마와 나는 마음 편하게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다면
허락하시고 아니시면 떨어뜨리리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평안할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욥처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도 없이 저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면 100% 옳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보시기에 선하신 일을 하시고자 허락하신일임을...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그 고통을 지나고 나면서 알게 될 것이다.
나도 지금 이렇게 겪고 마무리 되어가고 있지만, 후에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사건임을, 내게 있어야 하는 일임을 잊지말고 나아가야 하겠다.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욥은 계속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찾을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다. 욥은 그 어떤 불평도, 탄식도 하나님 앞에서 늘어놓는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사건 또는 사람 때문에 화가 나고 고통을 받더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가서 욕을 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고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법이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편애받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고난을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환난은 축복이고 정말 편애를 하시면서 허락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정말 처음으로 엄마와 3시간 넘게 믿음의 언어로 말이 통하는 대화를 했다.
우리집은 원래 내가 처음 교회를 등록하고 말씀이 들리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 전쟁터였다.
엄마와 동생의 영이 한편이 되어 나를 핍박하고 끊임없이 괴롭게 했었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늘 집에 올라가기 전 1층에서부터
하나님...나와 함께 해주시고, 나에게 지혜를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집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예측할 수도 없고, 딱히 덤빌 수도 없는 그런 것들이 너무 힘든 환난이고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1층부터 현관문을 여는 그 순간까지 계속 기도를 했었다.
하나님을 그렇게 간절히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축복이다.
그러나 요즘은 집도 좀 넓어지고, 엄마와도 어제 비로소 믿음의 언어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현관문을 잡는 그 순간까지 기도하던 나의 모습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솔직히 어떤 환난이든 겪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다. 일단 겪으면 힘들고 불편하고 죽을 것처럼 답답하다.
하지만, 환난 속 우리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깨달음도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면 우리가 한층 더 성장해 있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허락하시는 환난과 고통이 나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욥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
집에 들어가기 전, 기도하겠습니다.
화가 나거나 사건이 생길 때에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