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고통을 당하는 자신의 마음을 체휼하고 위로하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에 욥은 실망하고 낙심해 한다.
-처음에는 욥이 고난에 보이는 태도에 중점을 두고 보았는데, 이제는 친구들의 태도를 생각해 보게 된다.
친구들은 욥을 위해 먼 길을 와서 울어주기는 했지만, 욥이 괴로워하는 말에 그의 고통은 진정으로 체휼해주지 못한 채 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책망했다.
물론 엘리바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그것이 우선은 아니었다.
고통에 빠진 이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위로해 주었어야 한다. 누구나 고통에 빠졌을 때에는 위로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나 또한 괴로움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지 못했다. 처음 동생이 취직을 하고, 회사에서 선임에게 이유 없는 미움을 받아 하루는 집에 돌아와 나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동생은 그 때 매번 지각을 하고, 눈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기에, 동생의 마음을 체휼해 주기보다 ‘그러니까 네가 평소에 책잡힐 일을 하지 말았어야지. 너 출근은 제시간에 하냐? 왜 근무시간에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그래. 그러니까 미움 사는거야.’ 라며 동생의 행동을 나무랐고, 자꾸 그런 얘기를 하는 동생에게 ‘관심 없어, 나 공부해야 되니까 나가’라는 반응으로 동생의 감정을 공감해주지 못하고, 동생의 행실을 정죄하기만 했다.
위로가 많이 필요했을텐데... 아빠도 나도 동생의 행동만을 나무라서 동생이 첫직장에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아빠와 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동생에게는 위로가 더 필요했음을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했음을 느낀다.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오히려 고통 당하는 욥의 근처에서 자신들에게 까지 해가 될까 겁을 내는 친구들의 모습이다. 진정으로 친구를 위한다고는 왔지만, 뭔가 죄를 짓고 저렇게 당한다는 생각을 하며 욥과 함께 있다가 자신들도 해를 입을까 두려워 한다.
참..사람이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 자기애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이해가 간다.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엘리바스의 핵심이 없이 책망하며 말의 꼬투리를 잡는 모습에 욥도 이제는 화가 났나보다.
사람의 위로는 한계가 있다.
물론 인간적인 위로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본래 악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 상황을 겪지 못하면 그 상황에 놓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체휼이 어렵다.
가족끼리 너무나 화목한 가정의 친구는 내 입장을 체휼하기 어려울 것이고, 나도 동생처럼 직장에 아직 나가보지 않았기에 동생의 마음도 진정으로 체휼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위로로,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 줄 사람도,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오로지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다. 그 위로가 때로는 사람을 통해 말씀으로 오기도 하고, 예배 때의 설교말씀, 찬양으로 오기도 한다. 그 때에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위로를 받았다고 느낀다.
동생이 힘들어 할 때 책망의 말보다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네도록 하겠습니다.
진정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라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