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8일
신명기 21:1-9
“未濟殺人事件을 통해서 본 하나님의 사랑”
미제살인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4,000년 전 국가가 아직 형성되기도 전이었다. 당연히 사법체계가 정립되지 아니한 시대였다. 그때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관할을 정하고 그 해결방법을 제시하신다. 절차를 말씀하셨다. 의문사에 대하여 그냥 지나치실 수 없으셨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죽음이라 할지라도 동등하게 대하신다. 하나님의 생명존중의 모습을 본다.
그제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미제살인사건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과연 동일한 분이실까? 라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진멸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죽음을 말씀하신 하나님이셨다. 도무지 똑같은 시선으로 보기에는 간극이 너무나 커 보인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서 공의에 기초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난다. 작은 죄까지도 때로는 미제사건일 경우에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다. 살인현장에서 원근을 측량했고, 가장 가까운 지역의 장로들이 암송아지 한 마리를 대신 속죄제로 드려야했다. 밭 갈지 아니한 땅이었다.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송아지였다. 하나님의 퍼포먼스였다. 시청각교육이었다. 송아지 목을 꺾으면서 그들은 죄의 엄중함에 대해서 학습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어떠한 죄도 용납하실 수 없으셨다. 거룩한 공동체로 가꾸어 가시길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지극하시다. 그리고 엄격하시다. 공의에 기초한 사랑을 가르치신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 해결되지 못한 미제 사건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다변화된 사회에서 어떤 것이 죄인지 경계가 모호한 채, 그냥 지나쳐버린 것들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의 모양이라도 버릴 것을 요구하셨다.
죄가 죄인 줄 몰랐던 시간들, 죄를 짓고도 잃어버린 죄, 망각의 덫에 걸린 수많은 미제사건들 앞에서 오늘 말씀을 통해 그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셔야만 하셨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와 죄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셔야만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죄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하셨다. 죄 값을 치르셨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진멸시키신 사건이다. 이 망극하신 사랑 앞에 고개를 떨군다. 눈물이 흐른다. 하나님 사랑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이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내 속에 감추어진 죄를 주님께 자백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