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친구의 위로 같지 않은 책망같은 말에도 욥은 자신이 경솔하였다라고 인정한다.
견디기 힘든 괴로움과 파멸로 인해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욥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두려움이 자신을 엄습한다고, 세상의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의 두려움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우리는 늘 사람을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육을 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과 육 모두를 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욥은 고통 중 자신이 죽을까 두려운 것도 아니고, 더 심한 고통도 아니고, 주위의 시선도 아닌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내가 견디기 힘든 상황 속에서 동기, 선배, 교수, 부모 등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나귀와 소가 왜 울겠는가. 먹을 것이 없기에, 생명을 유지할 식량이 없어서 주인을 찾으며 울지 않겠느냐.
소금 없는 계란 흰자위는 맛이 없음이다.
짐승들은 배가 고파서 울부짖고, 계란은 소금이 없으면 맛도 없다.
욥은 자신도 나귀와 소가 우는 이유가 있듯, 하나님께 울부짖고 경솔하게 되는 이유가 있었음을 이야기 한다.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은 그칠 줄 모르는 고통 속에서 죽고 싶어하지만, 자신은 위로를 받고 기뻐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잘 살아왔다면, 고통 속에서도 죄의 대가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쩌면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살아가지 못하는 나에게 고통 속에서 힘이 되는 것은 말씀을 지켰다는 사실보다는 그래도 아직 나에게는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지킬 말씀이 나에게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끊임없이 주시는 말씀이 있다는 것에 나는 위로를 받고 기뻐할 것 같다.
고통 중에... 흑암과 혼돈 같은 우리의 삶 속에 말씀의 힘은 위대하다.
우리 엄마는 아빠의 바람사건으로 우울증에 시달려 약을 먹고, 매일 밤 악몽을 꾸며 소리를 지르고 잠도 못자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살았다. 그 누구의 위로도 약도 다 소용이 없던 때였다.
그런 엄마가 처음에는 목장도 안가겠다고 버럭버럭하시더니 교회에 등록을 하게 되고, 목장에 붙어있고 말씀 속에 사니 고통 중에도 점차 평안을 찾게 되고,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매일 찬양하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약도 바로 끊게 되고, 나에 대한 집착도 많이 내려놓고, 밤에 잠도 잘 주무시고 요즘은 말씀따라 살려고 노력하며 변화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말씀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말씀의 힘을 직접 느끼고 본 나는 내가 어느 상황, 어떤 고통 속에 있더라도 내게 말씀이 있다면 나는 희망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욥은 자신에게는 이제 남아 있는 것도 하나 없고, 자신이 약하고 기력이 없기에 기다리고 그저 참겠느냐고 이야기한다.
다른사람의 책망하는 말에도 나의 잘못은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겠습니다.
두렵고 힘들 때 설교를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