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1~2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에게 책망을 합니다. 죄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죄가 있어서 망하는 것이라고,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깨끗하겠냐고 하면서 지혜가 없어서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가까운 지체가 큰 환란을 당했습니다.
“할렐루야~!!”를 외치지만 환란 가운데 욥처럼 흔들리는 그를 보면서 탄식하며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나는 말씀이 하나도 없어?”하면서 책망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딱 저의 모습입니다.ㅠㅠ
엘리바스 처럼 뭔가를 많이 아는 척을 하면서
우리들 교회를 다닌 지가 몇 년인데 그 순간에 딱 생각나는 말씀이 없냐고~
교만해서 그렇다고~ 하면서 무너지고, 잃어버린 아픈 지체에게 오히려 교만하게 굴었습니다.
급기야 먼저 회개해야 끝난다고 하면서 맞는(right) 말 같으나 전혀 맞지 않는(not fit)연설을 했습니다.
알고 있는 말씀과 내 경험이 아닌 당한 자와 같은 입장이 되어서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어떤 생각이 드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실까?
하면서 같이 고민하기 보다는 숨이 턱턱 막히는 책망을 쏟아내니 체휼을 안 해준다는 답을 듣게 됩니다.
사실 속마음은 이 시간을 잘 견디어서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를 맛보기를 바라는 안타까움과 무조건 잘 해내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완전하기를 바라는 오만한 소망이 자리하기도 합니다.
저도 당장 남동생의 높은 목소리만 들어도 열부터 받으면서 지체에게는 “그걸 왜 못해?”라고 외치는 조급한 저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그래서 말이 많은가 봅니다. 주여~
그냥의 사랑이 잘 안되어서 아래로 내려가서 섬기는 밑바닥 감정의 충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오늘도 목장과 다른 집사님들과의 대화에서 몇 번을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엘리바스의 버전을 넘어서는 적용을 하려고 시도해 보았습니다.
잠시만 더 생각하면 머리에서 내려와서 같은 입장이 되어 진심의 마음을 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도망 중에도 힘든 자를 돕고자 하는 다윗의 사랑을 배울 수 있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같은 입장으로 내려가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동지가 되도록 말씀을 의지하여 할 말을 기도로 구하겠습니다.
주님, 당한 것이 많고 해 본 것이 많다고 인본주의로 구원의 역사를 훼방하는 위로를 전하는 입술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임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으로 원인과 결과를 다그치며 고난당한 지체를 괴롭게 한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맞는 것 같으나 맞지 않는 말로 나를 드러내는 방어와 처방으로 지체를 피곤케한 교만을 제하여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머리로만 해석하려는 지혜 없는 무모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구합니다. 사건가운데 함께 아파하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지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주님의 사랑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