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엘리바스는 늘 환난당한 자들을 돕던 욥이 막상 자신이 그 처지에 놓이니 괴로워하며 왜 자신을 살려두시는 가에 대해 묻는.. 그의 변화한 태도에 대해서 책망한다.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소망하던 네가 어떻게 이렇게 변했느냐고. 이 순간에도 같은 모습을 보여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언제나 HAPPY하고, 변치 않으며 환난에 놀라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는 흑암과 혼돈이 가득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언제나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다. 이 환난 때문에 이제는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믿었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아빠로 보이는 아저씨와 함께 서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아빠의 영역 안에서 꺄르르 웃으며 아빠가 열린 가방문도 닫아주고 무거운 짐도 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문득 집나간 아빠가 떠올랐다.
예전에 아빠와 나의 모습이 겹치면서 눈물이 났다. 여지껏 아빠는 수고하시느라 집을 나가신거라고 인정하고 아빠가 돌아오지 않아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아빠가 너무 그리웠다. 아빠를 이제 내 마음 속에서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들춰보니 아빠가 아직도 내 마음 안에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엄마의 집착 때문에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문득 아빠는 나 때문에 나갔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집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하나님을 만나기가 너무 어려웠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 때문에 고생하는 아빠라고 생각되어졌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빠의 대한 생각으로 힘들어할 때 그 주 예배를 드리러가며 아빠 생각을 하며 울고, 예배에 도착해서 나눈 찬양 전 첫 인사가 ‘나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였다. 그 날 말씀과 찬양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렇게 마음이 괴로워 뚝 떨어지다가도 예배 때에 말씀으로 위로받고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약한 사람인지라 언제나 상승곡선을 그릴 수는 없다. 잘 가다가도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말씀과 찬양, 예배를 통해서 다시 올라가기도 하는 것이다. 엘리바스의 말처럼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우리도 욥처럼 힘들어 침체가 오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회복되기도 하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엘리바스는 죄 없이 망하는 이가 어디 있으며 왜 정직한 자가 끊어지겠느냐라고 하며 망하고 환난받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욥이 자신의 죄의 대가로 이러한 환난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엘리바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1장부터 말씀을 보아온 우리는 숨겨진 사실을 안다. 욥은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욥의 환난은 하나님이 벌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허락하신 일이었고, 사탄이 욥을 시험하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늘 겉으로 보이는 행위로 어떤 것의 선과 악을 가리고, 현실세계에서 겪는 세상적으로 나쁜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보는 영화나 드라마,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에서도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로 많은 이야기들이 다뤄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한다. 나쁜 일해서 벌 받는 거라고.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뒤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
영화나 동화에서는 악인이 벌 받는 장면만 나오고 그 뒤의 모습을 그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정말 죄의 대가라면 악인은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겪는 세상적으로 벌이라 생각하는 것들(장애, 바람, 파산, 병)이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쓰일 때도 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믿는 우리에게는 신앙을 고백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엘리바스가 체험을 통해 사람의 온전하지 못함을 들었다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집 나가신 아빠가 하나님을 만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