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욥은 자신이 어머니 태속에 생기던 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던 것, 자신이 태어나던 날, 그리고 태어나 젖을 빨았던 것 즉 그의 생명이 유지되고 태어나게 된 모든 것들을 저주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음을 선택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외부적인 요소들로 인해 자신이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온전한 그로서는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저주의 말을 한 것이다.
자신의 소유와 자식을 데려갔을 때에도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지는 않았던 욥이 살을 치는 사건에서는 더욱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떨며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저주스러울 만큼 죽고 싶은 그 지경까지 이르렀다.
-성경은 그의 고난과 그의 말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욥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있는지... 그의 말을 통해 그의 괴로운 심정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에, 내게 찾아온 고난과 고난을 겪어가는 나의 심정을 상세하고 자세히 기록해 두는 것이 나에게도 나중의 후대에게도 정말 값진 보물이 된다. 우리는 욥의 고난과 그의 태도, 마음들이 기록된 성경이라는 보석을 통해 보고 배워간다. 나는 잘 까먹기 때문에 내가 겪었던 고난과 그 때의 내 심정에 대한 기록을 했었다. 고난을 넘긴 지금에는, 어찌어찌해서 그 고난은 쉽게 지나간 것 같고 남과 비교해보면 나는 고난 축에도 못 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록을 보며 되짚어보면 내가 어떻게 그런 고난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바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욥도 이 고난이 지나고 나면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욥은 지금 평안과 쉼을 가장 갈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땅 끝까지 죽고 싶은 심정으로 고통에 떨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시고 우리와 더 깊게 만나주신다. 내 경험 상은 그러했다.
-욥은 큰 고통 속에서 평안과 쉼을 갈망하고 있다. 나도 욥과 같이 평안과 쉼이 그리웠을 때가 있었다. 나는 몇 개월 전만 해도 엄마의 집착으로 힘들어 했었다. 교생 때 엄마는 자는 나를 깨워 새벽 5시부터 동네에서 도주극을 벌였다. 쫓아오는 엄마가 너무 두렵고 무서워 교회 화장실에 숨으러 도망 들어갔다. 엄마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 때 내 눈앞에 보이는 고무호스에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욥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나와는 다른 고난이지만, 욥도 자신의 몸에 병이 나고 차라리 그런 환경에서 이제 떠나 평안과 쉼을 누리고 싶지 않았을까.
차라리 이 세상의 끝을 보고 평안과 쉼을 누리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욥도 나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기에 그 은혜로 이 세상에 남아있고 내 마음대로 끝을 낼 수도 없다.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은 왜 고난당하고 마음이 아픈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빛과 생명을 허락하셨는가 묻는다.
고통이 심하여 죽기를 바라지만 오지 않으니 세상 것도 이제는 다 필요 없고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해 무덤을 찾으면 기뻐할 것이라한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이미 그 은혜에 둘러싸여 이 고통에서 내가 끝을 낼 수도 없고 고통의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이 아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선택받은 사람의 고통 속의 심정이다.
이제 욥이 죽음만을 갈구하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더욱더 눈이 감겼다.
오로지 불안감에 떨며 고통 속에 있는 자신과 이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만을 생각할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지경까지, 땅 끝까지 내려간 것 같은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바라실까. 우리가 더 하나님 밖에 볼 수 없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생각하게 허락하시는 것일까. 평안과 휴식 안일이 있는 곳보다 고난과 환난 속에서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나님과 나를 더 깊이 만나게 수고해 준 엄마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