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4일 화요일
신명기 19:1-13
“영원한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모세는 입을 열 때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로 시작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主語(주어)가 하나님이심을 명백하게 가르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신 생생한 기록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말끝마다 가나안 땅을 네게 주셨을 때를 말씀하신다. 또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라고 하신다. 네가 서있는 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잊지 않아야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만 했다.
그런 백성들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 그럼에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염두에 두셨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살인일 경우는 한 가정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그것이 과실치사인지 상해치사인지 아니면 명백한 살인인지를 살필 것을 말씀하신다.
도피성은 인간의 감정이 앞서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요 사랑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이 진행되는 동안에 세 지역으로 나누어서 도피성을 만들라고 하신다. 이후,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한 후에는 세 곳을 더 만들고 도피성을 향하여 길을 닦으라고 하신다. 전쟁 중에도 필요하였다. 그러나 안정된 후에는 더 많은 도피성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세밀하시다. 어느 민족에게도 없었다. 나라가 세워지기도 전에 법을 선포한 예가 없었다.
그들은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있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이미 승리를 한 것을 전제로, 그 이후의 삶을 설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년의 척박한 광야생활을 끝낸다는 사실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전이었다. 모세의 말에 그들은 점점 고무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도피성은 예수님의 그림자였다.
도피성 안에 있을 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안에 있을 때만 원수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죄인이 대제사장의 죽음 이후로 자유를 보장 받는 것처럼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죄인에게 영구한 자유를 보장한다. 이것은 성도에게 유죄를 선고하려는 사탄에게 공소권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죽으셨다. 영원한 도피성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나를 영원한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
오늘도 나의 처지를 보고 계신다. 그리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나를 인도하신다. 도피성의 또 다른 말 ‘주 안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도 내 삶의 주어가 되시기 위해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신나게 하루를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