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욥기 2 ~ 13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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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4남 5녀의 차남이며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로는 당시 농한기에 일제시대에 많은 식구들의 먹을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시집가지 아니한 동생들과 남자 형제들과 함께
대도시 주변인 인천으로 이사와서 여러가지 일도 해보고,
시계 가게도 차려보고, 화물차 운전도 해보고, 화물차를 사서 운영도 해보다가
차가 낡아 자주 고장이 났기에 직접 수리도 하고 용접하며 쌓은 경험으로
그 당시는 빵꾸와 용접이 전부인 3급자동차 정비를 시작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카센타로서 부모님만 먼저 서울로 올라와서 시작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했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도시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먹고 사는 일에만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고
서울에서 시작한 카센타 일이 나날이 잘되었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다른 사업에 손을 대서 실패를 했지만
여전히 카센타 일이 잘되서 변두리에 땅을 사고 그 곳에서 세없이 하려고 했는데
도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그 때부터 카센타 일은 접고
넉넉하진 않지만 가게와 집의 세를 받아 살 수 있었는데
종교에 관심도 없었지만 카센타 초창기에 작은 형의 교통사고로 죽는 아품과
서울 변두리지에 넉넉지 않지만 먹을 것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여건이었는데
큰 형이 신장병으로 수년간 치료받다 죽는 아품을 겪게 되었습니다.
잠시 어머니 주장대로 형들의 뼈가루를 절에 모셔놓기는 했지만 49제가 지나서 모두 흙에 뿌려 버렸습니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하는 아버지 말대로...
하시라도 놀지 못하던 습관이 젖어 있었던 터라 전에 하던 화물차 탕띠기를 했는데
제가 군대를 간 사이 그 일이 적어지고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버지의 바람이 시작되었는데 결국 이 일로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고
이때부터 저는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취직해 돈을 벌기까지 있던 재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취직 후 몇 년 되지 않아 집을 팔아야할 시기에 부동산 열풍이 불어
그 당시 최고의 시세로 팔 수가 있었고 이 돈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식구가 적당한 집을 갖고 충분히 쓸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10년간 고생하다 죽고 내가 갑자기 사업한다고 망했을 때
아버지는 살고 있던 집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 전세를 가자했는데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자신이 받은 계약금을 제외한 모든 돈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특별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고
부족한 돈은 누나에게 받아서 쓰시며 자신의 돈을 거이 다 쓰고 돌아가셨습니다.
운명하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이 말을 지키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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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하나님께서 까닭없이 나를 치심에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