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사탄은 졌기 때문일까 먼저 욥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욥에게서 왔다고 하지 않는다. 사탄은 여전히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니는 것을 보아 욥도 있긴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충동질하고 무너뜨릴 인간들이 세상에 많은 것이다. 사탄들도 이세상에서 아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첫 번째 내기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다.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고 내가 이겼노라고. 욥은 고통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집중하고 계시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집중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길 때는 감사하고 좋다. 그런데 욥처럼 온갖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왔을 때 과연 하나님께서 내 삶에 집중하고 계심을 알 수 있을까.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외부에서 나타난 고통이 이제는 내부로 들어온다. 자식을 잃고 모든 재산을 잃는 것과 내가 암이나, 어떤 큰 병에 걸리는 것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괴로울까.
-주변의 밖에 보이는 내 물건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고백하기가 조금은 더 쉬울 것 같다. 물건이고 나의 외부에 존재하고,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내 영혼이 입고 있는 내 몸. 태어날 때부터 내가 그냥 자연스럽게 나인 것처럼 살고 있는 이 몸 또한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고백하는 것. 내게는 정말 하나도 내 것이 없고 빌려쓰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은 조금 더 어려울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우리가 낮아지고 낮아져서 신앙고백을 해야 이제 이 내기를 마무리한다고 하실까. 아마도 욥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될 것 같다. 이제 겨우 2장인데 욥은 소유를 모두 잃고 이제는 뼈와 살을 잃게 생겼다.
-하나님은 왜 자꾸 사탄에게 이것저것을 허락하시는걸까. 아마 욥의 수준을 아시고 이것저것을 허락하시는 것 같다. 우리도 수준에 맞게 단련해 가실 것임을 믿는다. 내가 욥의 수준도 되지 않는데 욥기를 보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의 온 몸에 종기가 생겼다.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벅벅 긁을 정도로 심한 피부병이 났다. 그는 종기가 생기고 나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재 가운데 앉아서 몸을 긁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당장의 괴로움은 앞으로의 영생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당장의 가려움, 그 괴로움을 피하고자 욕하고 죽어라.라고 한다. 솔직히 우리도 이 짧은 괴로움과 고통이 영원할 것만 같아 싫고 피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씀을 통해 욥의 인생을 보며 우리도 참고 나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한 욥이 아내를 고를 때에는 분별이 없었나? 어쩜 욥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온전하고 정직한 욥 곁에 있는 그의 아내는 욥만큼의 신앙 수준을 따라오지 못했다.
욥이 분별이 없었을까? 부부 뿐 아니라 성도간의 교제에 있어서도 온전하게 같은 선상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각자 서로 다른,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만큼의 믿음을 가지는 것 같다. 그래서 서로 다른 믿음의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앞으로 이끌며 성장하게끔 돕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만 생각하더라도 내가 우리들 교회에서 간증이나, 나눔을 보아도 신앙의 수준이 완벽하게 동일한 부부는 한 쌍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욥의 아내도 욥과 동일한 수준의 믿음이 아닌 것이 그 때나 지금이나 당연한 것이다.
욥은 그런 아내에게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다고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복 받은 우리이기에 화도 받을 수 있다 한다. 그 말이 맞다.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거두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입술로도 범죄하지 않는 욥이다. 행동 뿐 아니라 입술로도 범죄해서는 안된다.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의 친구들도 몰라볼 정도로 흉하게 변하고, 옆에서 말도 못걸정도로 고통이 심한 욥이다. 그래도 그가 힘들고 지칠 때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도 아프거나 할때에 찾아오는 주변의 친구들이 있다. 과연 이친구들이 욥에게 도움을 줄지, 더 큰 시험을 줄지는 모르겠다.
내 몸 또한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나는 빌려쓰는 것임을 고백하며, 얼굴에 올라오는 뾰루지에 대해서 스트레스 받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집중하고 계심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