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7장 27절부터 44절입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가시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고, 홍포를 입히고, 왕이라 희롱하고, 침을 뱉고 때렸습니다. 그들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붙잡아서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지게 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 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 옆에 있던 두 도둑들 또한 예수님을 향해 욕을 하였습니다.
“저는 조롱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은 끊임없는 희롱, 조롱, 그리고 모욕의 긴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여 지는 그들의 자비라고는 예수님께서 마시길 거절하신 쓸개 탄 포도주를 제공한 것 뿐 이였습니다. 이것을 뺀 나머지 행동들은 야만적이고 악의적이었으며, 그들의 인간성은 최악이었습니다.
저를 간단히 돌아봤을 때, 저 역시 위의 모든 일들을 할 법한 한 사람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하였지만, 저의 마음속에서 저에 대한 실수를 지적한 사람들에게 분개하고 질투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의 최고의 아이러니는 예수님께서 그를 조롱하고 모욕한 모든 죄인들, 심지어 그의 옆에서 죽어가는 도둑들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도둑들은 그들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예수님)의 결함을 가지고 도둑들 그들 스스로가 더 낫다고 느끼고 싶어서 그 결함을 짓밟고서 일어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때리고 십자가를 지게하고 조롱하는 것에서부터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제 그가 너를 구하게 하라” 고하며 신성모독의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버렸을 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그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은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회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연민도, 슬픔도, 동정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가는 예수님을 욕하는 도적들을 통해 우리의 뒤떨어진 수준으로 강한 누군가를 밑바닥 까지 끌어내리면서 느끼는 악의적인 기쁨만을 볼 수 가있습니다.
마태복음은 그리스도의 모습 이전에, 약하고 죄로 가득하고 개선이나 구원의 희망도 없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의 수고를 통해 제 자신을 칭찬할 때, 저는 예수님 옆에있던 도둑의 모습과 같은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학생들이 아는 척을 할 때, 제가 하는 조롱의 대답들은, 저 역시 십자가 지고 있는 사람을 보고 지나가면서 조롱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비틀거리실 때의 목사님, 초원지기님, 목자님을 매정하게 조롱하는 저의 모습은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대사장들과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의 묵상은 저에게 영적 건강이 없다는 것을 보게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움직여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친절과, 배려와, 선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하고, 이제껏 그래주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죽음과 부활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에 둘러쌓여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제가 죄를 질 때마다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게하는 저입니다. 용서하여 주세요. 기도합니다. 속히 저의 죄에 대한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저를 새롭게 하여 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