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4일 금요일
신명기 15:12-23
“자유선언문”
사람이 살다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종이 된 동족에 대해서 언급하신다.
종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주인에 대해 절대 복종만이 있는 자들이다. 자기 소유권과 자기의사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 자존심이란 것은 사치였다. 그리고 한 번 종은 영원한 종이었다. 그들의 자녀들까지 대물림이 되었다. 주인의 재산에 불과한 자들이었다. 그것이 고대근동지방에서 노예의 인권이었다.
34회 바자회가 시작되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여전도회가 주축이 되어 분주한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이었다. 모두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모두가 하나의 가치를 위해서 열심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자회가 일 년 365일 계속된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노예의 삶이 이런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매일 바자회 같은 삶이 계속되고 피곤해도 불평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아파도 그들은 주인의 요구에 따라야만 했다.
이러한 시대 하나님께서는 종 되었던 동족들에게 칠년이 지나면 자유자로 그들을 풀어줄 것을 명령하신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노예의 인권을 챙기고 계신 것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높디높으신 하나님께서 물건처럼 취급당하던 시대에 가장 낮은 곳을 보고 계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것은 고대근동지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례였다. 노동력이 부의 기준이었던 시대에 노예를 포기한다는 것은 재산권포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신명기 15:15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애굽에서의 종 되었던 때와 너를 속량하셨다는 것이다. 너희 과거를 돌아보라는 말씀이셨다. 속량(Redemption)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값을 치르고 소유권을 되찾아 오는 것을 말한다. 또는 노예, 종의 몸값을 치르고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하는 것이 속량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찾기 위해서 일하셨다. 한 번도 아니었다.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열심히 일하셨다. 홍해를 가르셨다.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내리셨다.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 한 번도 쉬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열심을 보며 숨이 가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너희는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은 손자가 없으시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자녀만 존재한다. 일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씀이시다. 세상은 종을 비하하지만 당신의 자녀이기에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그들이 자유자로 거듭 나는 날, 퇴직금을 넉넉히 주라고 하셨다. 그 마음의 저변에 인색하지 말 것을 요청하신다. 그들이 자립할 정도로 후히 지불하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그러면 내가 너를 범사에 복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그 현장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자유가 선포되는 그 자리에 복을 주시려고 대기하고 계신다. 자유와 복이 넘치는 그 자리에 하나님 아버지의 너털웃음이 들린다. 바로 은혜의 자리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