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마태복음 27장 27 ~ 44절 '제 머리 깍기'
1977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군대가기 전까지 약 1년 8개월 동안 인생의 첫 방황을 했습니다.
#65279;
고3 말기에 담임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증오로 뒤엎은 휴유증이 너무나 컸습니다.
선생님들의 칭찬이었던 공부가 싫었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것이 보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집중을 해서 공부를 해야할 고3 말기에 슬럼프에 빠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학교도 가기 싫었습니다. 선생님의 대안대로 이과에서 문과를 시험보았지만 붙는다는 것은 희망사항이었습니다.
#65279;
전기와 후기 시험을 통해 처절한 패배를 맛보고 나니 허탈감을 어떻게서든 메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가 나뿐가? 해서 그 당시 컴퓨터 입문과정 6개월을 수료했습니다. 바둑도 배웠습니다. 마음을 달래려고 유행가 여러 책을 다 불러봤습니다. 화투에 빠져 보기도 했지만 오늘 말씀처럼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라고 희롱하는 말이 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군 입대를 자원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65279;
1996년 5월 카나다 이민을 가고 싶은 열정이 마음에 일어났고 인생의 두 번째 방황을 했습니다. 밖으로 돌던 오락생활에 지쳐있어서 접고 싶었는데 아내가 넓은 세상에서 자녀들과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민을 준비했습니다.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택시기사 자격증을 따고, 카나다를 일주하고 와서 이민 인터뷰까지 했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의논을 드리려 했더니 자신은 가지않겠다고 먼저 말씀하시는 바람에 오히려 이민을 가지않은 이유가 ‘아버님이 함께 가지 않아서’라고 정당화할 수 있었습니다.
#65279;
카나다 이민 불가에 대한 허탈감은 이전 만큼 컸지만 한번 방황을 한 이력이 있어서 빠르게 마음을 추수렸습니다. 오히려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를 경력 공채로 입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지금 십자가에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하는 조롱을 보란 듯이 멸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약이 아니라 독이 되었고 후에 보란 듯이 자발적으로 사표를 던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데 모든 걸 제 스스로 하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망하게 함으로 치시고 지난날 가족의 상처를 치유키 위해 희롱과 모욕을 감당하고, 또 하나의 고난을 통해 십자가 잘 지고 가는 훈련을 시키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적용/ 가정중수를 위한 십자가 잘 짊어지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