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의 두려움
그리스도께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즉 그들은 끝까지 견디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한 구도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 영혼을 예수께 맡긴다 해도 아마 결국에는 다시 절망에 빠지고 말 것이다.
나는 조금 전까지도 선한 감정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감정들이 없어져 버렸다.
나의 선함은 아침 안개와 같고 새벽이슬과 같다.
그것은 갑자기 나타나 한동안 계속되며 많은 것을 약속하였으나 결국 사라져 버렸다.“
친애하는 독자여, 나는 이런 두려움이 종종 그것을 사실이 되게 한다고 믿는다.
항상 그리고 영원히 예수를 신뢰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을 구원하기에 충분치 못할 일시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 정도 예수를 신뢰하기 시작했으나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길에서 계속 자신들만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출발부터 잘못되었으므로 얼마 안 있어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신뢰한다면 우리는 계속하여 신앙을 견지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구원 문제에 있어서는 예수를 신뢰할지라도 어떤 다른 문제에 있어서 자신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아무리 굵고 강한 쇠사슬도 고리가 한 개만 끊어지면 아무 쓸모가 없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모든 면에서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 해도 단 한 가지 면에서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한 가지 점에서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하여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성도의 견인에 대한 한 가지 오해가 많은 사람들의 견인을 방해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로 하여금 신앙의 경주를 계속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그 경주에 있어 자신을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곧 멈추고 만 것이다.
건축에 사용하는 모르타르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섞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 벽돌과 석재가 잘 붙지 않는다.
신앙의 첫 출발을 내딛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다가도 나중에 가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이며 오메가이시다.
당신이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면 육신에 의해 완전케 되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계속한 마음으로 시작하고 시작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계속하라.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우리를 보존시킬 능력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런 주제에 관해서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단 한 번 말한 일이 있다.
<고린도전서 1:8#12336;9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 말씀은 우리를 끝까지 보존하는 능력이 어떻게 공급되는가를 말함으로써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있다.
주님께서 어디에 예비해 놓으시든지 간에 필요한 것만은 확실하다.
은혜의 언약에서 불필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궁전에 걸려 있는 금으로 만든 방패는 실제로 무용지물이었지만 하나님의 병기고에는 필요 없는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지금부터 모든 것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예비해 놓으신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하게 될 것이다.
받는 사람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견고하게 보존되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 가장 앞선 신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 말할 수 있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글을 쓴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계속 끝까지 견디어 마지막에는 정복자들이 되기 위해 그야말로 매일매일 새로이 은총이 필요함을 아주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성도가 아니었다면 은총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 많은 은총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영적 생활의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대리석으로 된 상은 음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배고프고 목마르며 먹을 빵과 물이 있음으로 인해 즐거워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분명히 쓰러질 것이다.
신자는 개인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매일 모든 것을 공급해 주는 거대한 원천에서 그것을 끌어와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다면 달리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많은 은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모든 구변과 지식에 풍족했던 고린도 성도들도 그러하였다.
그들은 끝까지 견고케 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여러 가지 은사와 능력은 결국 다 쓸데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만약 천사의 방언을 한다 해도 새로운 은총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여러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관해 배운다 해도 언약의 머리 되신 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일생은 고사하고 단 하루인들 지탱할 수 있겠는가?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것을 반드시 이루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위대한 필요성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변덕을 잘 알므로 은혜 안에서 끝까지 견딜 수 없으리라는 고통스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완고하지는 않아도 성격상 보수적이다.
그러나 날 때부터 변화가 많고 변덕스러운 사람도 있다.
마치 나비와 같이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온갖 아름다운 꽃에 다 날아가 보지만 아무 꽃에는 머물지 않는다.
사업에서나 지적추구에서도 그렇다.
그들은 한 종교를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동안이나 계속 가진다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며 두려워한다.
우리는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차례차례 모든 것을 해보지만 오래 지속하는 것은 없다.
그들은 남들보다 두 배로 확신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질 상 변덕의 유혹을 받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 감동을 받으면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친애하는 독자여! 단 하루 동안만이라도 죄를 발견치 못할 날아 있는가?
내가 믿는 대로 당신은 완전한 성결 가운데 걷기를 원한다고 하자.
또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어떠해야 하다는 것에 대해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있다고 하자.
그러나 조반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부끄러운 일을 행할 만큼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하는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수도자들이 고립된 방에 은거하더라도 유혹은 따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한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우리 마음 가운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견고케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약하여 죄를 짓고 타락한다.
우리가 패배하는 것은 어떤 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부주의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여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옵소서” 하고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오랜 삶에서 오는 피로가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때 우리는 피곤치 않고 독수리같이 날개를 치며 좀 더 멀리 날아오른다.
가장 좋고 진실한 날에는 쓰러지지 않고 걸어간다.
우리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는 것 같지만 오랫동안 잘 견디어 낸다.
젊을 때의 함이 단순히 육체의 자랑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성령의 힘인 이상 그것이 우리 가운데 지속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오랫동안 하늘나라로 가는 도상에 있었던 사람은 왜 그의 구두가 철과 놋으로 될 것을 약속받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바로 길이 험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난의 고개와 겸손의 골짜기가 있음을 발견했다.
또 사망의 골짜기에 허여시도 있다.
이 모두를 통과하여야 한다.
환락산이 있는가 하면(이런 산이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절망의 성도 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 성 안을 들여다 본 일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거룩의 길을 끝까지 견디어 나가는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키 어려운 놀라운 순례자들이다.
“오 놀라운 세계라, 말로 할 수 없구나.”
그리스도인의 하루하루는 하나님의 미쁘심이라는 금실에 자비라는 고귀한 다이아몬드가 달려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하늘에서 찬사들과 정사들과 권세자들에게 우리가 땅에 있는 동안 즐기고 누리던 그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한 치 앞에 두고 계속 살아왔다.
우리의 영적 생활이란 바다 한가운데서 타고 있는 불꽃과 같고 공기 중에 머물러 있는 돌과도 같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 없이 그 진주 문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우주가 다 놀랄 것이다.
단 한 시간 동안 보존된다 하여도 우리에게 기쁨과 경이가 충만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그러하다고 믿는다.
이것이 전부라면 걱정하고 근심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황량한 광야와 같다.
우리 중 일부는 하나님 섭리 안에서 크게 만족하고 있으나 다른 사람들은 선한 싸움을 하고 있다.
우리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자주 집안에서 울려 퍼지는 거룩한 찬송을 듣는다.
그러나 많은 선한 백성들이 아침에 기도라던 무릎을 일으키자마자 욕설에 휩싸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일하러 나가서도 온종일 소돔성의 의로운 롯과 같이 음탕한 대화 속에서 괴로워한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들이 들리지 않는가?
세상은 은혜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
이 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이 세상을 지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수의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둑이 숲마다 숨어 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예리한 칼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최소한 우리는 오직 기도라는 무기를 지녀야 한다.
걸음걸음마다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오 하나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를 끝까지 견고케 하소서!
우리가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기도하라.
참 종교란 처음부터 초자연적이고 계속되는 동안도 초자연적이며 그 마지막도 초자연적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역이다.
계속해서 주의 손길이 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런 필요성을 당신은 지금 느끼고 있다.
당신이 그것을 느끼게 될 것을 생각하니 기쁘다.
당신이 자신의 보존을 위해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만이 우리를 타락에서 지키실 수 있고 그 분의 아들과 함께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