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신명기 15:1-11
“리셋”
하나님은 꿈을 꾸신다. 가난한 자가 없는 하나님 나라였다. 가난한자들이 배부를 때, 내가 배부르다고 하셨다. 구제를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이라고도 하신다. 하나님을 채무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신명기 15:1
이 한마디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담겨져 있다. 칠 년이 되면 이스라엘에는 채무자도 채권자도 없는 사회가 된다. 가난한 자에게는 희망의 해요 가진 자는 자신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적어도 빚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셨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였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셨다. 가난이 대물림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씀이시다.
너희는 동일하게 나를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임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한 몸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으셨다. 한 가족이 되는 사회를 희망하셨다.
정직하게 땀을 흘린 노동의 대가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꿈꾸신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재난과 어려움 때문에 고통당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편에 기꺼이 서서 계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네가 바라보는 형제의 얼굴에서 나를 보라는 것이다. 연약한 형제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시다. 이것이 긍휼이다. 사랑이다.
요즘 심심치 않게 매스컴을 장식하는 뉴스가 있다. 열심히 살아도 저축은커녕 빚만 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서민이나 청년 등 우리 사회의 취약 계층이다. 최근 이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금융업자들의 고금리 수취와 폭행, 협박 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빚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서민들은 생업과 사생활까지 침해당하게 되면, 극단적인 경우 삶까지 포기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무자비한 사회를 막고자 발 벗고 나서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또 다른 안전장치를 마련하셨다.
구제였다.
7년이 가까이 왔을 때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가난한 자를 외면하지 않도록 배려하셨다. 그들을 돕지 않는 것이 죄라고 규정하셨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하셨다.
면제와 구제는 수레의 두 바퀴이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건강하게 굴러가게 만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이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칠 년이라는 고비를 넘기면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사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반드시’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면제 하는 자에게 ‘반드시’(5절) 갚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너는 ‘반드시’(8절) 가난한 자를 도우라며 구제를 명령하셨다. 구제의 기준을 명시하셨는데,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는 것이다.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셨던 말씀을 곱씹어본다.
오늘 내 호주머니에 이웃을 향하여 기꺼이 열 지갑이 있는지를 점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