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은 마태복음 26장47-56절입니다.
유다는 무장한 무리들을 데리고 와서는 예수님께 입을 맞춥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시면서
제자들과 무장한 무리들과의 싸움이 벌어지자 예수님이 멈추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성전에서
가르칠 때 잡지 않았는지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칩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얼마 전에 자신을 배신할 것에 대하여 탄식하셨지만 그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그 순간에 유다를 “친구여“하고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유다가 예의를 갖추고 입을 맞춥니다.
배신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친밀함을 나타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예수님께서 그 순간에 가롯유다를 “배신자”라고 불렀을 것 같습니다.
유다가 구원에 관계된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친구로 삼아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싸움을 멈추라고 명령하시면서 살기를 선택하셨다면 천사의 군대를 부를 수
있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죽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희생적인 용기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2차 대전 중의 공군 항법사였던 한 목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에는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타고있던 폭격기가 독일군의 포격에 맞아 불이
붙었습니다. 조종사는 항법사와 다른 모든 승무원들이 낙하산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비행기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조종사는 자신이 먼저 탈출하려고 뛰어내린다면
다른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비행기를
최대한 유지한다면 자신에게는 불이 붙은 비행기를 탈출할 시간이 남아있지 않게 될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이런 희생의 경험을 통해서 항법사였던 그는 목사가 되었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결정이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희생의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결정을 요구받아본 적이 아직 없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했고 저도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기도하라고 했을 때 첫 번째로 제자들은 잠을 잠으로써 도망하였습니다.
지금 그들은 문자그대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후에, 제자들은 이 순간의 기억의 도움으로 믿음으로 굳게 서서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결국 예수님과 함께 서서 그를 위해 죽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희생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신한 그의 친구 유다를 위해서 목숨을 희생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한 구절이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한계상황은 곧 하나님을
만날 기회다.” 극단적인 한계상황의 순간은 곧 하나님이 개입하실 순간이기도 합니다.
살아오면서 저도 한계상황에 내 몰리는 많은 경험들을 했습니다.
항상 그 상황에서 도망치려했습니다. 피하고자 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그리고
바로 그 길목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는 벽만이 나를 멈추게 할 뿐 저는 도망치지 않을 용기가 없습니다.
나를 멈추어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면 영원히 도망치려 할 것입니다.
주님!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배신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멀리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아 주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저에게 사랑과 섬김의 용기를
주시옵소서. 당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