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8일 토요일
신명기 12:32-13:11
“가감하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현혹하는 자들이 있음을 경고하신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실패를 조장했던 뱀의 세력들이 이 땅에 엄연히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적을 행하거나 꿈꾸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상의 중심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셨다.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그곳에서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 미리 경고하고 계신다. 그곳 역시 우상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제외한 모든 다른 민족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은 군사적인 대치뿐만 아니었다. 종교적으로 언제든지 침입하려고 호시탐탐 엿보고 있음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호칭 앞에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를 오늘도 주목한다.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목이 곧은 백성들을 향하여 너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라고 계속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한다는 것, 그리고 뜻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러하셨다.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 전부를 우리에게 투자하셨다. 그러하기에 우리들에게도 마음을 다할 것과 뜻을 다할 것을 요청하신다. 당연한 요구이시다. 순도 99.9%의 신앙을 원하시지 않으신다. 순도 100% 신앙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배격하되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라고 하신다. 단호하게 끊을 것을 명령하신다.
오늘날도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만히 우리 주위에서 맴돌고 있는 수많은 우상들을 바라본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성의 상품화,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습하듯 다가오는 매스 미디어들이 그러하다. 이런 문화들을 선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받아드리면 하나님 말씀을 버리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좀먹게 만드는 우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상을 어떻게 규정하고 대처할 지가 중요한 신앙의 열쇠가 되겠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형상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이 만연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보인다.
그 중 하나
운동이라는 이름하에 너무 몰두 하였던 자전거타기에 대해서 절제해야함을 깨닫는다. 말씀 묵상과 운동의 시간이 겹쳐질 때, 갈등하였던 내 자신을 바라보며 회개한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8
약간의 유익을 버리고 영원한 약속을 붙들기 위해 경건을 연습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