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과 성령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천국 문에서 빼 든 그룹의 칼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 가운데 불꽃처럼 타오른다.
사람들은 이 변화가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절망한다.
중생은 위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그것은 피조물의 능력 안에 있지 않다.
거짓된 위안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진리를 왜곡하거나 숨기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중생은 초자연적인 것이고 죄인들 자신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내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를 거부하거나 잊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간사한 사람이라면 나의 독자들은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요한복음 3장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분명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요한복음 3장을 정독하여 보라.
앞의 성경구절에만 집착하지 말라.
3절에는 분명히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나 14절과 15절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한복음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8절에서는 넓은 의미로 같은 놀라운 교리를 반복하고 있다.
<요한복음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이 두 말씀은 같은 저자가 말하였고 똑같이 영감 받은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의미가 일치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될 것이 없는 이 성경 구절을 왜 어려워하는가?
한 곳은 하나님만이 구원을 주실 수 있다는 필연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또 한 곳에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구원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결론을 안심하고 내릴 수 있다.
사실 주님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신다.
그들이 거듭났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들의 믿음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을 신뢰한다.
모든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면 예수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는가?
믿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요, 우리를 새롭게 하는 일은 주님께 속한 일이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믿으실 수 없고 우리가 그를 대신하여 중생의 사역을 행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은혜로운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 안에서 중생의 사역을 행하신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할 수 있었던 그분은 우리가 영원한 안전을 얻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고 또 주실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마음이 변화는 성령의 사역이다.”
이것 역시 중요한 진리이다.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잊지 말라.
성령의 사역은 은밀하고 신비로운 것이어서 그 결과를 보고만 알 수 있다.
사람의 육체적 출생에도 신비로운 것들이 있으니 성령의 거룩한 사역은 더욱 신비롭다.
“요한복음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의 사역이 신비롭다고 하여 그것이 예수님 믿기를 거절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성령께서 예수님에 관해 증거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들에서 씨를 뿌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 씨를 자라게 하지 않으시면 씨를 뿌려도 소용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기의 태만을 변명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밀한 능력만이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한다는 이유로 경작을 게으르게 한 것을 정당화 할 수 없는 것이다.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라는 사실은 생명을 추구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역사하기를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성령께서 이미 그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섭리를 통하여 일하시지만 그렇다고 인간들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생명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우리의 호흡과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힘을 주시므로 우리는 아무 문제없이 살아간다.
곧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회개하고 믿을 수 없다.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신뢰한다.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 그분의 선하고 기쁘신 뜻에 따라 우리 안에서 역사해 오셨음을 알게 된다.
그 문제에 어떤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진리 가운데 어떤 것들은 실제 경험에서는 아주 단순하다.
죄인이 믿는다는 진리와 그의 믿음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므로 생겨난다는 진리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영혼이 위험에 처해 동안, 명백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중력과 부력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해서 구명보트에 올라가기를 거절할 사람은 없다.
굶주린 사람이 소화의 전 과정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먹지 않겠는가?
독자여 당신이 모든 신비들을 이해할 때까지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하면 당신은 전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여러 가지 난제에 빠져 당신의 주님이시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통한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주 가운데 멸망할 것이다.
형이상학적이고 불가사의한 것들에 대해 토론하는 데 빠져 영적 자살을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