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신명기 12:15-28
“하지 말 것과 할 것”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조심할 것이 우상숭배였다면 두 번째는 먹는 것에 대한 교훈이었다. 고기를 먹을 때, 특별한 장소를 언급하신다. 그리고 피와 함께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이 복을 누리는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먹는 것까지 일일이 지시하셨다. 먹을 것과 먹지 않아야할 것을 구별하셨다. 혹자는 이것을 간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간섭이 아니라 구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신 것이다. 먹는 것조차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백성이기를 원하셨다.
원래 인간은 채식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에덴동산에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양식은 과일이었다. 그러나 노아 홍수 이후, 타락한 인간들이 변화된 생태환경에 적응하도록 고기를 먹도록 허락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차선의 선택이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척결 일 순위가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나안 땅, 거민들을 진멸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육식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시면서 피와 함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순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멸이라는 단어와 피를 먹는 것을 금하시는 하나님의 생명 존중의 모습을 이중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등장하는 진멸이라는 단어는 공의를 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피와 함께 고기를 먹지 말 것을 요구하심으로 살생을 금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신 것이다.
가나안 거민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폭력성을 규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공의를 실현하기 위한 심판이었다.
그러므로 진멸과 거룩은 수레의 두 바퀴 같은 것이다.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지키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우상에 바쳐졌던 제물을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자들의 먹을 수 있는 자유에 대해서 그것을 포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조차 구별되기를 원하셨다.
그것은 간섭이 아니라 거룩이었다. 공과 사를 구별하신 것이다.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심판이었다. 그리고 빼놓지 말라고 하셨다. 먹는 자리에서 모두가 평등했다. 정한 자나 부정한 자 모두가 함께 먹을 것을 권하신다. 그리고 특별히 레위인들을 챙기라고 하셨다. 그들은 분깃이 없는 나의 식구이기 때문이다.
광야 40년 동안 동일한 만나를 먹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하나님께서는 먹는 것조차 세상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임을 그들에게 심어주시고자 하셨다. 하나님의 배려였다.
그리스도인들의 먹는 기준은 아래와 같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