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근시안적 모습과 영적 모자람을 꾸중하시는데에 있어 예수님과 같이하지만 나도 이 사건을 구속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했기 때문에 제자들과 더 같이 있는 제 자신을 봅니다.
유다가 세상에 맞춘 초점을 넘어서지 못한 것을 보게됩니다. 예수님이 구원에 영적 초점을 맞추신 것이 배신당했다고 느낍니다. 유다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구원이 중요함을 못 본것이 애통합니다. 가난을 돈으로 끝낼수 있다 생각했다니 애통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원하던 예수가 아니라서 너무 화가 나 죽임만을 해결책으로 본 유다가 애통합니다. 내가 유다와 너무 닮아 애통합니다.
유다와 다른 제자들은 구원을 위한 진정한 유월절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준비하였습니다. 진정한 유월절 어린양에 기름붓고 다가오는 희생에 준비시켰습니다. 재산을 써가며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준비하였습니다. 여인의 옥합은 비싼 값을 주고 산 진주와 같았습니다.
나는 어떠한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뛰어난 행동을 하는데 막는가? 나의 옥합은 어디 있는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어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것은 무엇인지? 내 세상의 삶에서 가장 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저의 옥합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돈은 항상 있기도하고 없기도하고 충분한 돈은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에 돈 보다는 시간을 중요시합니다. 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기질 수 없습니다. 계속 째깍대며 지나갑니다. 마감일, 계획, 약속, 회의, 스케쥴은 내 앞에서 알프스 위에 알프스처럼 일어납니다. 하지만 가만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 척척 다가옵니다. 일들을 끝마치기에는 항상 시간이 모자랍니다!
8년동안 우리들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8년동안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에 참석하고, 양육 받고, 결혼식과 장례식을 가고 매일 큐티와 씨름 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나를 지나가는 시간을 잡아 먹는 일들에 화가 났지만 내 삶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고 세상의 사건들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매일하는 큐티는 문제점으로 남았습니다.
큐티가 왜 문제였는지는 가장 많은 자기자신의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것들은 내가 이런 저런 수준으로 준비해서 보여주기만 하면 됐지만 큐티는 전혀 다른 수준의 헌신이었습니다.
큐티를 하려면 자리에 앉아 내 자신을 내려놓고 식탁 위의 커피컵처럼 가만히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앞에 놓고 성경으로 나를 봐야합니다. 어렵고 불편해서 보지 않으면 좋겠지만 읽지 않으면 볼 수가 없고 볼 수 없으면 나의 죄를 알아차리지 못 하고 이루어가는 구원인 회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큐티는 시간이 듭니다. 7년 동안 내 시간의 가치관으로 저버렸습니다. 다른 일을 할 시간을 위해 빨리 끝내야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한 번도 제 큐티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올릴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간섭하셨습니다. 내 큐티인에 필기를 조금 하는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에 큐티를 올려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은 드려야 했습니다. 이 것은 나의 이루어가는 구원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다른 세상 것들을 위해서는 시간이 없다는 뜻이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구원을 주신 유월절 어린양께 내 옥합에서 예물로 시간을 부어드립니다.
하나님 계속 은혜를 부어주시어 제가 당신께 시간을 드릴 수 있도록 하옵소서. 시간을 쓰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하옵소서. 매일 나를 준비하여 주시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