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오늘 퇴근하고 일대일 양육과정 주제 큐티를 하다보니
내 신앙의 현 주소가 드러나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지난 주에 창원을 다녀왔습니다.
그 동안 아기를 안 보여 주던 남편이 #65279;
면접교섭을 제대로 허용하지 않아서
재판에서 양육권이 불리해질 것을 염려해서
한달에 두 번 두 세 시간을
아기를 만나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나마 아기를 품에 안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괴씸합니다.
우연히 남편의 차를 봤는데 번호판을 바꿨더군요.
멀쩡히 타던 차의 번호판을 왜 바꿨을까...
여러가지로 미루어 짐작해 보고, 정황을 생각해본 결론은
여자가 생겼기 때문에 아직 소송중이니 불편을 격지 않기 위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번호의 노출을 꺼려서라는 것에 머물렀습니다.
부인을 세 번이나 갈아치우는데 네 번은 못하겠나...ㅜㅜ
말씀으로 어떻게든 구속사를 연결시켜서라도
나도 변하고 그도 변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차분히 거룩의 길을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어떤 길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든
그 길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갈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먹고
말씀의 은혜안에만 머물고 싶었습니다.
창원 다녀와 보니 사무실에 법원서류가 와 있습니다.
물론 소송관련 하여 재산 은닉과 재산 형성을 위한
나의 수고로 벌어서 준 대여금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짓문서들입니다.
그동안 잠잠히 가라앉아 있던 뻘들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이내 양육숙제하면서 마음을 가라 앉히기는 했지만
마음이 유쾌하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혼탁한 것입니다.
회개없는 입맞춤으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다윗과 같은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말씀을 잘 적용하여 마음을 잡으려고 하지만
맞서 나가는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
이 큐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무너진 나를 봅니다.
숙제를 하고 있는데 노트북도 열받아서 전원이 꺼져버립니다.
다행히 조금 식혔다가 켰더니 글이 저장되어 있어서
몇시간 매달려 작성한 큐티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내 머리도 열 받아 있는 걸 좀 식혀야 이전에 들어 두었던 말씀이
다시 살아나서 다시 적용하며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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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79;
작성자 김 주옥
제 5과 기도 - 기복을 넘어 팔복으로
주제큐티 마태복음 20:17-28
제목: 너는 무엇을 내 놓을래?
1. 말씀요약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나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말씀하십니다. 높은 자리를 구하는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와 그것을 분히 여기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잔을 마시는 자들이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도리어 종이 되어야하고 예수님은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2.연구와 묵상
a.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이유를 아십니까? (마 20:17)
b.주님을 넘겨준 일이 있습니까? (마 20:18-19)
c.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높은 자리, 이름있는 자리, 나를 높일 자리를 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 20:21)
d.예수님이 마신 쓴잔을 달게 마시고 영광의 나라에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마 20:23)
e.으뜸이 되고자 하면 도리어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떤 환경에서든 섬기는 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까? (마 20:27)
f.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대속물로 그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나는 주님의 일을 위해서 무엇을 내 놓을 수 있습니까? (마20:28)
3.느낀 점
나는 언제나 예수 안에 있다고 하면서 안도하고 있는 편인데 그 속내를 살펴보니 예수님이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고 보통 사람들 보다 돋보이는 삶을 살려는 세상욕심이 가득차 있기 때문이고 해결사처럼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거의 대부분임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이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죽으러 가시는 길임에도 그것을 간과하고, 나는 제자들 처럼 어떻게 한 자리 차지해 볼까, 혹은 주님 덕에 좀 편하게 누리면서 살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구속사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도 오직 세속에만 촛점이 맞춰져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만 나옵니다.
내가 성과를 창출하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나의 능력과 나의 탁월한 실력 때문임을 나타내고자 머리가 꼿꼿하며 우쭐댑니다. 이럴 때 나는 나를 돋보이게 하려고 주님을 죽는 자리에 넘겨 줍니다. 죄 짓는 순간에도 주님은 잠시 눈 감고 계시라고 넘겨주고 나의 악을 발동하여 더 교묘하게 죄를 짓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 하다가 기독교가 욕 먹는 대목에서는 같이 왈가왈가 하는 것이 싫어서 침묵하고 듣기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과 대화 할 때는 내가 예수를 아주 잘 알고 신앙이 좋은 사람인양 나를 드러내며 나도 속고 남도 속일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내가 주님을 팔아 넘기는 악함입니다.
교회 안에서 쓰임 받는 것을 즐거워 하지만 그 마음 밑바탕에는 나의 능력을 인정 받고 칭찬 받고자 하는 마음이 늘 있습니다. 이것이 높은 자리를 구하는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처럼 주님께 크게 인정받을 자리만 구하는 것과 같다고 보입니다.
종이 되는 마음으로 잘 섬겨야 하지만 섬김을 했을 때는 내가 이만큼 했다는 생색을 꼭 나타내는 악함이 늘 있습니다. 내가 말 안하면 몰라줄까봐 농담으로라도 한마디 꼭 하는데 이것은 온전히 섬기는 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섬기면 나의 다른 바라는 일들이 잘 풀릴거라는 보상을 항상 기대하는 마음이 배후에 있습니다. 이것이 기복인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악한 내가 진정으로 변하고 싶어 오늘도 애통의 눈물이 납니다.
지금의 고난의 환경에 매여있는 것이 나의 구원과 가족의 구원을 위해 쓴 잔을 달게 마시는 일인데도 나는 이 환경과 처지가 일시적인 것이어야 하고 계속 이런 상태에 머무른다면 못 견딜 것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쓴 물을 입에 머금고 삼키지도 못하고 뱉어 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과연 마시려니와 하셨으니 마실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받고 잘 삼켜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자리에 앉고 싶습니다.
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주님은 그 목숨을 대속물로 내 주셨는데 그 은혜를 입은 나는 거룩으로 나아가는 생활을 위해 늘 힘쓰고 나의 삶의 뒷 모습을 보고 나의 자녀들이 구원의 길에 나아오며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용납할 수 없는 남편에게도 탓만 하지말고 내가 만난 예수로 인해 변화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구원을 위해 섬길 수 있는 날이 오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로 잘 해내고 싶습니다.
요즘의 마음으로는 재판과정에서 권모술수와 거짓된 모습을 보여준 그 남편이 내 삶의 결론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 같은 원래 악한 그 인간 때문에 내가 이용 당했고, 또 정에 약한 내가 또 말씀 순종이라는 명분하에 약한 모습으로 나가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과 분한 마음이 오물처럼 끓어올라와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또 내 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가정을 잘 견디고 섬기라고 한다면 내가 대속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솔직한 심정은 지금 혼자 편히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내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내어 놓기가 싫습니다. 하지만 내 놓으라고 한다면 내놓으라고 한다면...지금은 대답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내 모습의 현 주소입니다. 주님을 또 넘겨주고 있습니다. 내 죄 때문에 울던 울음이 다시 연민으로, 분함으로 울고 있습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4.결단과 적용
말씀 듣고 깨닫고 쉴 틈 없이 적용하고 달려왔던 지난 몇 달처럼 다시 내 죄를 보고 나의 삶의 현장을 인정하고 나아가고 싶습니다. 회개로 인한 화평이 왔지만 평강하여진 마음이 되고나니 다시 감정적으로 부딪치고 싶지 않은 두려운 마음에 많이 눌려 있습니다. 비고 소제 되어진 집에 일곱귀신이 다시 놀러온 것 같습니다.
나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사단의 놀이터를 제공하지 않도록 앞으로 닥칠 두려운 일 들을 염려하지 않도록 말씀에 더 집중하겠습니다.
수요예배에 앞자리에 앉도록 일찍 출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