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5:31-46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다시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을 양과 염소의 두 그룹으로 분리하신다 하셨습니다. 판단의 잣대는 다른 사람을 섬김을 통해 예수님을 극진하게 섬기느냐입니다. 양들은 섬긴자로 천국에 갈 것이며 염소들은 섬기지 못한자로 지옥에 갈 것입니다.
양같은 섬김
내가 오늘 본문을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해본다면 아마도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나햐면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생각에 반하는 말씀을 너무도 많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요?
구속사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주님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태도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양들이 물, 음식, 의복을 그에게 주였다고 말할 때, 그들은 무척 놀랍니다. 염소들은 그들이 주님께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때 놀랍니다. 주님은 타인에게 주는 것이 자기에게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바리세인들과 그의 제자들에게 가장 큰 계명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두 번째로 큰 계명은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것이 바로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내 이웃을 사랑할 때, 나는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다른 형제가 그렇게 하듯이 반드시 내가 감옥의 죄수들을 방문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형제가 그러하듯이 집없는 자들을 반드시 내가 먹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옷을 공급하는 돕는 구세군에게 내 옷을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좋은 생각이지요. 수단에 저질수를 정화할 기계를 발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사람을 사서 그 정수기를 거기에 갔다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할 필요는 없으나, 내가 주님에 대한 사랑과 내 주변의 불쌍한 이웃을 위한 깊고 진실된 사랑을 가진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 사랑이 없다면 타인을 섬기는 정말이지 나나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나하면 사람은 의식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게 만드는 그 사랑의 근원은 주님이십니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죄책감이나 동정심과 같은 감정으로 섬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섬김은 보통일이 아닐 것이며 나를 피곤케 합니다.
그렇다면, 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이 제 주변에 주신 사람들입니다.
첫 아내가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그녀는 한달 동안 요실금과 치매로 고생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알코올 중독을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요실금과 치매의 원인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내 아내였고, 바로 그런 그녀는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 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습니다.
현실을 알았을 때, 나는 내가 그녀를 돌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한 달 동안 하교후에 집에 오면 매일 아침과 오후에 그녀의 수발을 들었습니다. 매일 아침과 매일 오후에, 나는 그녀의 대소변을 처리했고, 잠옷과 침대커버를 갈았습니다. 나는 날카로운 칼도 모두 숨겼습니다. 언젠가 집에 왔을 때 그녀가 도둑을 찾느라 한 손에 칼 하나를 쥐고 집안을 배회했기 때문입니다.
그 달 말에 그녀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고 나는 그녀의 알코올 중독을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염소가 되어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양같은 섬김을 유지했습니다. 나는 내 아내를 다시는 사랑스럽게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죽은 시점에 나는 완전히 한 마리 염소였습니다.
지금 저는 장애를 가진 처남과 함께 살고 있는데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내 돈으로 그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있습니다. 얼마나 내가 섬김에 생색이 나는지 모릅니다. 염소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양의 마음을 조금씩 허락하셨습니다. . 나는 그럴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
내 자신에 대한 나의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 하나님이 내 주변에 두신 사람들은 누구인가?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양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용기와 격려의 언어도 의미합니다. 그것은 시간을 내어 그들을 돕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은 나를 어느 곳에도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 나를 양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어느 정도는 내 섬김이 내 사랑의 잣대가 됩니다.
주여 저를 양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채우시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소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지 적게 들어가는지 그런 것 머리 굴리지 않고 진심으로 그들을 대접할 방법을 알길 원합니다. 하루에 한사람씩 꼭 섬기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