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지난 주 목요일에 핸드폰을 잠깐 잘못하여 손에서 놓치는 바람에 물이 들어갔고 괜찮다 싶어서 그냥 켜 놓았는데 배터리가 다 되어 충전을 하려고 하자 충전이 안 되어서 3일 동안을 핸드폰 없이 살았습니다.
월요일에 가서 연휴라 물이 조금 들어갔는데도 내부를 말리고 수선하여 개통을 시켰는데 수리하시는 분이 토요일에도 정상적으로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휴대폰 없으면 금방이라도 불안하였지만 3일 후에 열어본 결과는 별로 중요한 것도 온 것이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자주 올리기 때문에 휴대폰이 꼭 필요하지만 휴대폰이 없어도 생활을 잘 할 수 있음을 경험하였습니다.
이 일을 경험하면서 나도 조금 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리라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평소에도 조금은 성령을 의지 하였지만 조금 더 성령을 의식하면서 의도적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이 일을 만났는데 어떻게 처리하면 좋나요? 라고 묻는 것도 좋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휴대폰을 켜면 먼저 성경말씀이 나오도록 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방법을 동원하여 성령님께 예민해 지려는 노력을 하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렵니다. 할렐루야!
휴대폰이 물에 예민하듯이 주님을 따르는 내가 무엇에 예민해야 할까요?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은혜인 우리 구원의 원천에 대하여 경외하는 마음으로 고찰해 보기를 바란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죄안들이 용서받고 회개하고 성결케 되고 구원받는다.
죄인들 안에 무엇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선과 자비와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다.
잠시 이 구원의 원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생명수인 정결한 강물을 바라보자!
그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깊은 심연인가!
하나님의 여러 속성과 같이 은혜는 무한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으로 충만하시다.
또한 하나님은 선으로 충만해 계시다.
하나님(God)은 선(Good)의 약자이다.
무한한 선과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자비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죄인들이 용납되고 용서받는 것은 그분의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기억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구원의 통로인 믿음에만 몰두하여 믿음의 원천이요 근원이 은혜에 대해 망각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믿음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성령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나오는 믿음도 하나님께서 이끄신 결과이다.
은혜는 구원이 첫 번째요 마지막 원인이다.
믿음은 필수이긴 하지만 은혜가 사용하는 중요한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으나 구원은 은혜로 인한 것이다.
이 말을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같이 크게 외쳐 보자.
“은혜로 너희가 구원받았느니라.” 가치 없는 죄인에게 이 얼마나 기쁜 소리인가?
믿음은 수로나 도관의 역할을 한다.
은혜는 샘의 근원이다.
믿음은 자비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통로와 같은 것으로 이 통로를 통해 흐르는 물로 목마른 사람이 소생함을 얻는다.
이 통로가 파괴되는 것은 큰 비극이다.
로마에 가 보면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물을 흘러 보내지 못하는 많은 수로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많은 아치들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수로는 물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완전히 보존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믿음도 진실하고 건전하여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잘 연결시켜 줌으로써 영혼을 위한 자비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믿음은 통로이지 근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따라서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모든 축복의 근원보다 더 높이 평가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의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들어 내지 말라.
믿음이 마치 당신의 구원의 독립적 원천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
우리의 생명은 예수를 바라봄에 있는 것이지 우리의 믿음을 바라보는 데 있지 않다.
믿음으로 모든 것이 우리에게 가능해지지만 능력은 우리의 믿음 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은혜는 기관차와 같고 믿음은 사슬과 같아서 영혼이라는 객차를 기관차의 동력에 연결시켜 준다.
믿음의 의는 믿음 자체의 도덕적 우수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있는 것이다.
우리 영혼 안에 있는 평화는 우리 자신의 믿음을 묵상함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화이신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믿음이 그분의 옷깃을 만지면 그 능력이 우리의 영혼에 전해진다.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의 믿음이 연역하여 멸망하는 것이 아님을 알라.
떨리는 손으로도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어도 주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다.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지 우리의 믿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메지지가 가느다란 전화 줄을 통해서도 전달되는 것같이 화평을 전하는 성령의 증거는 그 무게를 측량할 수 없으리만치 작은 믿음을 통해서도 우리 마음에 도달될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을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