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3;29-39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었고, 의인들은 하나님의 증거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상 때에 조상들은 몰랐습니다. 알아도 몰랐을 것입니다. 현실이 무섭고 환경을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정말 적용을 못합니다. 특히 돈 문제를 가장 못합니다. 적용을 못하면서 하는 변명이 있는데,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면 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내가 있었다면 순종과 적용을 목숨 걸고 했을 것이라는 궤변을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이 그런 나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그랬답니다. 조상 때에 자기들이 있었으면 선지자들의 피에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금 그 조상들보다 더 참혹한 죄에 참예하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인류최대의 큰 죄악을 자행하면서 선지자들의 무덤과 비석을 꾸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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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죄가 끊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지자들을 죽인 죄가 작다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금 예수님을 박해하면서 스스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못하는 적용을 그때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 더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활자로 책으로 되어 있어서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습니다. 선지자 시대보다 예수님 시대가, 예수님 시대보다 지금이 더 주님의 역사가 분명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환경에서 적용 못하는 나는 예수님 시대에는 더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 적용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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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선지자을 죽이던 조상들의 죄를 이제 그만 끝내라고 하십니다. 나(예수)를 죽임으로써... 내가 죽음으로 그 죄를 그만 끝내라고 하십니다. 이제 그만 죽이고 말씀대로 적용하라고 하십니다.
나는 입으로만 믿는 자입니다. 말로 정답을 처방만 합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은 안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겠습니까? 공감도 체휼도 못하는 목자가 얼마나 밉겠습니까? 나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는 목자가 얼마나 싫겠습니까? 초신자의 작은 믿음에서 한번 믿어볼라고 했는데 되는 일이 없으면 배신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목장해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훌륭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내가 조상들의 죄를 증명하는 자 같습니다. 예수를 죽이는 자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같은 죄를 짓고 있지만 독사의 새끼들이 아니고, 지옥의 판결을 피하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주님을 부릅니다. 나를 용서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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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야! 태도야! 말씀을 무시하고 계명을 업신여기며 나를 떠나려하고 나를 외면하여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를 얼마나 품으려고 하였느냐. 그것을 횟수로 셀 수나 있겠느냐.
그리하여도 네가 나를 원치않고, 세상이 좋다고, 돈이 좋다고 벗어나려 하였도다. 바깥 어두운데에 버려지려고 하였도다.
보라. 지금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집에 주인 없는 자되어 우상과 세상마귀가 들어가 있지 아니하냐.
돌아온 자여! 이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찬송할지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때까지 기다리고 찬송할지라. 그의 높으시고 영원하신 그 이름을 찬송할지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