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22:23-33입니다.
일부 새두개인은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차례대로 죽은 칠형제에게 시집갈 수 밖에 없었던(계대혼) 여자는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를! 예수님은 사람들이 부활한 상태에서는 결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제 천사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두개인들에게 주님의 마음에는 죽음이 없고 단순히 상태의 변화만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영육에서 순수한 영혼으로 변화될 뿐입니다.
육적인 삶에서, 우리는 죽음을 실제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육적 세계에 정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놓아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우리의 죄많은 교만을 내려놓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망을 너무 사랑해서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사두개인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진실중의 하나로 여기고 그것을 경배하는 유혹에까지 넘어갑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무덤에서 죽음을 맞이하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가 진짜 죽었다면 그의 부활을 믿을 순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있어서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최후를 아니까요 무덤에서의 이틀이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아무도 죽음으로부터 되돌릴 순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죽음의 역할은 예수님이 정확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들을 위해 고통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부활에는 고통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정말로 침착하게 우리의 죽음을 기다립니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바랄뿐입니다. 끝까지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랑 사는 것은 괜찮은 짐이 될 수도 있지만, 세 번의 경험은 불가능 할 겁니다.
한사람과 그리고 다른 두명의 기억과의 공존은 나에게 사실 버겁습니다.
결혼은 빡셉니다.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의 아내 진경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이 부르신 존재 및 소명을 위해 나를 끝까지 지탱해준 값없는 축복입니다.
진경과의 결혼은 다른 어떤 배우자보다도 나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그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혼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신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지요
과거의 고난과 힘든 일로 인해 단련되어서인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나의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원하실 때 우리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 깜빡 하시면 한 사람이 죽고 연이어 다른 사람이 죽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것이며 그의 가슴에 안기어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불평이나 염려나 걱정에 전혀 상관없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모든 사랑함에 거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주여 내가 가장 사랑하기 주저했던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어 당신과 저의 아내를 더욱 사랑케 하옵기를 원합니다. 성령으로 채우사 주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자 경배와 존귀를 받으실 유일한 자임을 더 깊이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