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34-48
목사님의 설교마다 피를 흘리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싫어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이런 설교를 하면
더 싫어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하십니다.
저는, 싫어하고 욕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쁩니다.
좀 말씀이 들리면서도 적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고 처방하면서도
저는 따지고 있습니다.
눈 앞에 이루어진 것만 좋아하지 말고
안된 것에 감사하라는 말은 외우면서도 안됩니다.
지난 토요일 시험을 봤고,
여섯과목 중 세 과목이 합격하였습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좋고, 입이 헤벌어집니다.
잘된 것만 좋고, 떨어진 세 과목이 서운해서
왜 떨어졌는지 맞춰보기도 싫습니다.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그 거짓에 감동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눈꼽만치라도 인정하는 말을 해주면 그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저 때문에 눈물을 그렇게 흘리시는데
대중 속에 숨어서 저 때문만은 아니라고,
저 사람때문이라고 그 한 사람을 찾아냅니다.
정신분석으로 안되는 것을 말씀으로 해석받으면서도
분별이 안됩니다. 삶에서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겉돕니다.
삼일 금식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습니다.
하루 금식을 하는데, 하루 종일 누워있었습니다.
10년동안 학교근무를 해도 누워서 수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이 시켜주시는 3일 금식을 해봤기에
장담을 했었습니다.
발표가 나기 전이라,
자신있는 과목 맞춰보다 다 떨어졌다는 낙담도 있었고,
가까이 지내는 집사님의 힘든 일을 옆에서 보면서
제 일처럼 죽을 듯이 괴로운 것도 경험하였지만,
가장 힘든 것은 굶식이었습니다.
전에 결석으로 수술한 것이 깨끗한가 검사하기 전에 해야한
어제의 굶식도
얼마나 속이 메스껍고, 물 한 모금이 맛있는지
알아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으면서
오늘 바리새인들 중의 한 율법사처럼 질문도 못합니다.
예수님이 제게 물으십니다.
너는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전.. 전...
이러며 한마디도 능히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소심하게
제가 부를 이름이십니다.
오직 부를 이름 그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
사랑하는 부목자님의 이번 주 기도제목이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인데
저도 오늘 하루종일 그 부목자님의 기도제목으로
중얼중얼 기도하며 다니겠습니다.
그러면 그 분과 저의 원수를 발 아래 둘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자꾸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붙은 세 과목만큼 회개하겠습니다.
떨어진 세 과목만큼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