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일 수요일
신명기 7:12-26
“진멸할 것인가? 진멸 당할 것인가?”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한 하나님의 복은 그야말로 유토피아 그 자체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번성의 복과 물질과 건강의 복을 약속하신다. 그와 함께 가나안 족속을 진멸할 것을 요청하신다. 이스라엘과 가나안은 공존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정복전쟁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26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이 전쟁의 關鍵(관건)은 진멸할 것인가? 진멸당할 것인가? 양자택일만 있을 뿐 제3의 길은 없는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숙지해야할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기억하는 것이다. 그들은 수효에서 압도적이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그들은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던 정착민이었다. 도시국가 형태였던 당시, 계속되는 전쟁에서 전투경험이 풍부한 실전에 강한 정규군이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0년간 광야에서 산 경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애굽에서의 재앙과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 기억하라고 거듭해서 촉구하신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잊지 말아야했다.
21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이 말씀은 내가 너희들 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이 임마누엘 사상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의 뿌리였다. 야곱의 새로운 이름 안에 하나님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그의 열정과 소망을 인정하셨다.
그는 이름 그대로 속이는 자로 지난 60평생을 살아왔다. 에서와의 만남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할 때였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얍복강에서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들고 씨름하였다. 어찌 하나님께서 지실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에게 있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열망을 인정하셨다. 스스로 패배를 선언하신다.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바꾸셨다.
그의 자손들이었다. 그들이 이제 가나안을 정복해야만 한다. 그들의 싸움은 장기전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평생을 싸워야할 전쟁이란 말씀이시다.
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우리의 싸움도 동일하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지만 평생을 싸워야할 전투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진멸할 것인가? 진멸 당할 것인가의 두 갈래 길에 서있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