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오늘부터는 찰스스펄전 목사님의 구원의 은혜를 17과를 올립니다.
요즈음은 구자억 목사님의 트롯트 찬양 곡을 극동 방송 대신에 오고 가며 듣고 있습니다.
주로 오고 가면서 극동방송 중에 설교 말씀과 찬양 등으로 오고 가며 들었는데 때로는 시원시원한 트롯트를 들으면서 나의 기분을 업 시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 하시는 것도 듣다보면 거룩한 찬양만을 들을 때보다 가끔씩은 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따 참말이여 가사 (구자억 목사 트로트)
아따 참말이여 믿을 수 없것는디 하나님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아 따 참말이여 믿을 수 없것는디 하나님 날 위해서 대신 죽으셨다고
이리저리 사방팔방 둘러봐도 어디가 이쁜 구석 있어서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그 목숨을 내준단 말이여
<로마서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성경에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한다.” 라는 말씀에 주의 하라.
이 말씀은 아주 놀라운 말씀이다.
성경에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한다.” 는 표현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십자가의 도를 경멸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비난하기 위해 이 말씀을 인용한다는 것을 들었다.
주님은 악인을 구원하시고 극히 사악한 자를 영접하신다는 갓이다.
이 성경 말씀이 그러한 비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말하는지 보라!
자신의 선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주목을 끌기 위해 우리 안에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거짓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아무런 선이 없다는 것을 아신다.
우리는 타락이후에 절대타락으로 구원을 얻을 자격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인은 하나도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 하신다.
“우리는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다.” 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서 선과 의를 찾아보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선과 의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 오셨다.
주님은 경건치 못한 자를 의롭다 하신다.
죄 있는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서만 가능하다.
이 일은 오직 주님께만 속한 이적이다.
죄 있는 자를 지노와 죄에서 전작으로 해방된 자로 여길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게 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랑과는 거리가 먼 무가치하고 부패한 죄 덩어리이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며 또한 완전히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상속자 곡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되었음을 확신한다.
어쩌면 주일 날 예배를 소홀히 생각하기도 하고 말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바로 당신이 경건치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욱이 슬픈 사실은 당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려 했으며 부이해 왔다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로 가득 찬 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그분의 권능과 신성의 분명한 증거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
당신은 아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를 자신에게 제시할 수 있었다면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므로 지금은 그런 생활이 굳어졌고 당신의 삶 어디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
당신이 경건치 못하다는 사실은 바닷물이 짜다는 사실처럼 분명하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키려고 원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게 하신다는 이 복음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당신이 버림받으리라는 것은 당신이 현재 살아 있다는 것만큼 확실하다.
의로운 행위를 통해 자신이 의로워 진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남을 속이고 있거나 아니면 스스로 속고 있다.
거짓이 없는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은혜와 구속이라는 이 위대한 치료법은 오직 영혼이 병든 자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치료를 위한 책도 건강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병든 자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이 영적으로 병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위대하신 의사께서 바로 당신을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이 죄로 인하여 완전히 파멸되었다면 당신이야말로 구원 계획에서 표적이 되는 사람이다.
사랑의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당신 같은 사람을 의롭다고 하셨다.
전능자의 능력으로 사죄의 은혜를 베풀려고 해도 죄가 없다고 하는 자에게 사죄의 은혜가 임할 수 없다.
사죄의 은혜는 죄책을 느끼는 사람에게만 임한다.
사죄는 죄인에게만 필요하다.
사 죄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을 용서한다든다 범죄하지 않은 사람을 사면하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라는 설교를 들은 사람은 “당신의 설교는 마치 범죄자들에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설교는 감옥에서나 해야 어울릴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설교자는 “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감옥에서 설교한다면 그 본문으로 해서는 안 되지요.
거기서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라는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율법은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의 교만을 꺾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버림받은 사람을 위한 것이요, 그들에게 새 소망을 주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목자가 길을 잃지 않은 양들을 뒤쫓아 갈 필요가 있는가?
동전을 잃어버리지 않은 여인이 온 집을 뒤지며 찾을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은 의로운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똑 같이 빛을 비추시지 않는가?
결실의 계절이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오지 않는가?
악한 민족에게도 비와 태양은 때를 따라 내리고 비추인다.
소돔에도 태양은 떠올랐고 고모라에도 아침 이슬은 내렸다.
오, 친구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나와 당신의 생각을 초월하므로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강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무한히 용서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사죄의 은총은 죄인을 위한 것이다.
어떤 청소부에게 내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신다면 후히 보수를 드리겠다고 하였다 하자.
그 청소부는 약속대로 다음날 아침 일찍 화실로 나왔지만 다시 자기의 일터로 보냈다.
왜냐하면 그는 깨끗이 면도하고 머리도 단장하고 또 말끔한 옷차림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미술가에게는 그 그림의 배경에 어울릴 청소부가 필요했진 말끔한 신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치니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라고 말씀하신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호칭인가?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며 또 의인으로 대우하신다.
이 말씀은 바로 당신을 위한 놀라운 말씀이 아닌가?
독자여, 이 문제를 깊이 깨닫고 구원에 참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