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어둠을 탓하기보다 한 자루의 촛불이 되자.
어제는 아름다운 클 이야기를 마당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늘 그렇듯이 어둠을 탓하기 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이 되려는 마음들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첫 번째 클 이야기는 총동문회장으로 계시는 김애경 선생님의 나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Imf 시절에 남편은 사업을 하다 모든 것을 잃었고 더구나 큰 병인 직장암에 걸렸습니다.
다행이 많은 사람의 기도 덕분에 수술이 잘 되어 한 달 동안 입원을 하다 퇴원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버티어 낸 것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덕분이었습니다.
남편이 가장으로서 전업주부로 돈도 못 벌고 불안해하였지만 나는 한 번도 불평을 하여본 적이 없습니다.
따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시장가서 사온 것을 이것저것 일거리를 주었습니다.
아들이 외국에 있었지만 알리지 이 일을 알리지 않았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다하여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도 암으로 고생하시며 고모님도 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전부다 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는 수술하여도 어렵다고 하자 아버지가 수술을 하지 않기로 하였지만 그래도 내가 모시겠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따라 했습니다.
지금은 보름 동안 치료를 하여 정상이 아니지만 치매 증상이 있고 말이 어눌합니다.
대체적으로 암은 건강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편은 운동을 하여 건강하였고 주변에 술과 담배를 많이 한 사람들도 오래 사는 것을 종종 보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가 주원인인 것 같습니다.
아직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요?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하는 말을 듣고 대단하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2년 정도 귀저기를 채워주셨는데 저는 20년을 채워드리겠습니다.
‘글을 쓰는 저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2년 정도 어머니를 위해서 할 생각이었는데’ 여기다 더 끝까지 사랑하시겠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분명히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김애경님의 삶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날이 많을 것입니다.
클 이야기 두 번째는 힐링 연극으로 소통하는 삶이라는 주제로 송연옥 강사님이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표현할 때 어떤 색으로 표시하는 가요?
녹색, 핑크색, 에머렐드, 무지개 색으로 표현이 됩니까?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면 저는 색깔로 그려서 줍니다.
이 일을 계속하여 한 사람이라도 좋게 되기를 바라며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연극은 연출하기 때문에 내가 주인공이 됩니다.
송연옥 이름 그대로 지옥과 천당사이에 사는 사람입니까?
고3때 화학 선생님이 공부하다 말고 칠판을 딱 던지고는 하하하 하고 웃었다.
내가 앞자리에 않았으므로 칠판을 맞고 왜 던지느냐고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 앞으로 오더니 네 이년아 발로 써도 이것보다 낫지 네 이름이 연옥이지 부모님이 선경지명이 있지 하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화학공부를 잘하였지만 그래도 어린 나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글씨를 못 쓰는 이유는 어릴 적에 작두에 막내딸이지만 소여물을 끓이려고 작두로 잘리는 것을 도우다 손가락이 잘렸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6학년 현충일이이 기억도 생생합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남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 하고 2년쯤 후에 Imf로 어렵기도 하고 살기가 싫어서 강원도를 가는데 운전대를 놓고 싶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생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어려웠기에 차를 갓길에 세워두고 펑펑 울었습니다.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서울 고덕동에서 살다가 수지로 이사를 왔습니다.
저는 심리치료를 하는 학과에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생긴 곳에 원서를 냈습니다.
주변에서 공부를 한다고 찬성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사회에서 버림받았던 성폭력, 가족 폭력 등을 어려운 쉼터아이들 치료하는데 110회를 하였습니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누군가 에게 하고 싶어 합니다.
맨 정신으로 하면 비난을 받지만 가면을 쓰면 비난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를 증오하는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을 바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는데 자신이 엄마를 잣으로 방송에 나갔는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어머니가 잡은 마이크가 왼손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원손은 싫었는데 그 왼손이 엄마인 것입니다.
그러나 잘 치유하여 지금은 결혼하여 6년째 살고 있습니다.
개명을 하고 싶은 것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릴 적에 학대를 받은 사람은 자해를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살거나 둘 중의 하나로 삽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네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네가 힘들지 않고 너의 이야기를 애기해 주면 좋겠다. 라고 접근을 합니다.
사람에게 트라우마에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것을 내면에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둘째는 자기 자신을 학대하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못하면 미쳐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깊은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하며 그 것을 들어주는 진정한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에게 상담으로 치료가 될 수도 있고 치료의 하나님에게로 나아오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