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2장 1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에게 혼인잔치의 우화를 통해 천국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초대된 하객들은 오지 않고 소식을 전한 종이 모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왕은 군대까지 보내 그들을 죽입니다. 또 왕은 종에게 나가서 누구든지 아무나 초대하라고 명령합니다. 하객들로 예식장이 가득할 무렵, 왕은 예복을 입지 않은 한 남자에게 묻습니다. 그는 그 남자를 묶고 밖으로 내동댕이치라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하십니다.
예복
왕은 예복이 없는 그 남자를 친구라 칭합니다. 어찌 왕이 그렇게 친절히 불러놓고는 이를 갈며 통곡할 어두운 곳(지옥)으로 내칠 수 있을까요?
저는 다시 저의 인본적인 사고에 빠졌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 하객을 결혼식에 초청한 뒤 친구라고 부르며 자리로 응대한 뒤 음식을 대접하면서도, 예복을 착용하지 않는 결례를 힐난하며 지옥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뭡니까? 저는 왕이 오기를 거절했던 하객들을 죽이고 그 메신저까지 욕보였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가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지옥에 보내는 것은 납득이 안 됩니다.
그러나 구속사적 관점으로 이 장면을 보니 약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내가 그 하객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해 예수님의 혼인잔체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적절한 의복을 입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잔치에 내가 어울리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어떻게 하나님이 내가 속한 자인지 알고 또 내가 초대받은 자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바울은 나의 오래된 자아를 내려놓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예예수님의 은혜로 덧입혀야 합니다. 어떻게 내가 그리 됐음을 알까요? 내가 예수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압니까?
왕이 예복을 입지 않은 하객에게 친구라고 말할 때, 그 말투는 상당히 슬픈 어조였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초대에는 기꺼이 응했으나 그 초대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바로 저인 것 같습니다. 나는 초대에 응대했지만, 그것이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예배와 기도, 성경 정독, 내 죄보기, 진실한 고백, 죄스런 언행에 대한 회개, 자신의 변화를 위한 필수적인 훈련으로서 내 환경을 수용하는 것, 고난을 견디는 것, 하나님과 친밀해지려는 것, 사랑을 하는 방법에 대한) 헌신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복이 의미하는 바를 진정으로 이해했을 때, 나는 내가 그것을 입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난장이가 거인의 옷을 입으려는 것처럼 이 예복을 입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니다. 그 옷들이 맞질 않습니다. 걸으려 하면 헛디뎌 넘어집니다. 나한테 무지 불편하지만, 연회장에 있으려면 반드시 그것을 입어야 합니다. 내가 커지는 마술을 부려서라도 그 옷을 입고 십지만,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죄는 나를 참 작은 자로 만듭니다.
그 옷을 아무리 이상하게 입고 있더라고 나에게 아무리 잘 맞지 않더라도 그 연회장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내침을 당하기는 싫습니다.
주여,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당신이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그 예복이 딱 맞도록 저를 성장케 하소서! 나를 성숙하게 하옵소서. 당신이 나를 위해 준비해주신 옷을 포기하지도 벗지도 않도록 하여 주옵소서. 주여, 평안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