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2:1~14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 초청을 하는 비유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심판, 인생의 사거리에서 초청을 받았으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의 비통함, 청함을 받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하십니다.
어제는 새벽예배에서 택해주심에 감사해서 울었는데 저녁에 금방 마음이 돌변하여 모든 예배를 마친 후에 초원님과 그 누구에 대한 이야기로 저의 악함을 드러났습니다.
“집사님은 비판이 좀 쎄~” 하시는데 “제 의가 강해서 그런가봐요~”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그럴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왜 그런 건가요?” 하며 물었습니다.
저는 남동생이 태어나던 8살에 부엌에 들어가서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언니는 공부를 했고 저는 추운 겨울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가가며 제사상을 차리는 일까지 하며 계속 살림을 도왔는데 그 일을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이혼하신 17살부터 저의 첫 결혼까지 10년간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고 참 힘겨웠습니다.
저는 27살 까지 키가 자랄 정도로 성장이 느렸고, 중학시절 까지 작고 체중미달 이었던 저는 친구도 없을 정도로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형제들 중 게으르고 공부도 젤 못했습니다. 부모님의 관심은 공부를 잘하는 언니에게, 학교에서도 언니는 유명했고, 동생들도 잘 했습니다.
대학도 가기 어려운 성적이었지만 부모님의 이혼 후 경제사정이 어려우니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 오라는 친정아버지의 말에 반항하여 전문대라도 갔고, 방학이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에 나타나신 엄마의 자식들을 향한 편애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제일 가난하고 못났던 저는 늘 뒷전 이었습니다.
“김양아~ 학교가면 뭐하냐? 우리 집에서 같이 일하자!” 알바를 하던 식당의 사모님이 개학 때가 되면 일 잘한다고 그 당시 최고의 인건비를 주시면서 하시던 말씀 이었습니다.
“선생님~ 어디로 가세요? 우리아이 데려가 주세요!” 6개월의 짧은 기간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마쳤을 때 부모님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아~ 선배님이셨구나~!!” 졸업 후 5년 만에 들렀던 학교 방송국 후배들에게 저는 전설이 되어 있었습니다.
“진경이 같은 며느리감만 있으면 좋겠다.”고 첫 결혼으로 다니게 되었던 교회에서 교회분들이 제가 이혼한 집 딸이라서 싫어하셨던 시어머님께 하시던 말씀들이었습니다.
“역시~ 선생님은 달라요!”하며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 듣는 환대였습니다.
“김선생 정말 착한 사람이야~!” 인내 7단으로 잘 참아서 하나님이 원수 갚아주신 관리자의 칭찬을 받아내곤 했습니다.
어제의 제 모습으로 ‘주님, 왜일까요?’하고 묻는데 앞의 일들이 주루룩 생각이 납니다.
어디서나 열심히 해서 또 끝까지 해서 칭찬을 듣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가족 안에서 받아보지 못한 찬사를 밖에서는 받는 저를, 저의 모습으로 여겼었기에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잣대로 삼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인정받는 다는 것이 익숙하지도, 그것을 좋아하는 우쭐한 감정도 없이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열심히 한다는 무감각입니다. 그러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여지없이 판단을 넘어서는 미움의 감정으로 비판을 쏟아내며 ‘내가 맞다’는 이성과 입술이 춤을 춥니다.
어려서부터 존중받지 못한 편애의 상처로 무의식에 박힌 열등감이 뿌리가 깊어지고, 사랑 없는 교만의 기둥과 무성한 분노의 가지로 이렇게 자라난 것은 아닐까 묵상해보았습니다.
교만 뒤에 숨은 열등감 그리고 출구인 분노의 3종 세트가 내게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오늘 새벽예배에서 어제의 질문에 한 줄 한 줄 대답을 해주십니다.
고난으로 불러도 오지 않다가 보내신 군대로 멸하고 불살라진 끝자락, 방황하던 밑바닥 인생의 사거리에서 초청해주셔서 들어왔는데
그렇게 말씀으로 거룩의 예복을 입으라고 목사님께서 목 놓아 부르짖으셔도 알아듣지 못하고
벌고 벗고 서서 오히려 초청하는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는 살인을 행하는 자리로 다시 돌아간 자가 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복은 예수님이시라고 하시는데 내가 판단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옷 입고 있는 중인데~ 그래서 청하는 자로 인도하실 것인데 주님의 주관하심을 무시하고 나의 상처로 문질러대면서 무감각하게 피 흘리며 이를 갈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여기까지 와서도 예복을 입지 않으면 어쩌려는 건지...
내 속의 압살롬을 보면서, 자신의 죄의 결과를 볼 수밖에 없었던 다윗처럼
자신도 기가 막히고, 상황도 기가 막혀서 주께 묻지도 못하고, 옷을 찢고 드러누운 심정이 이해가 되고 통곡이 되었습니다. 비판하던 그 모습이 바로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이었구나!!!
주님, 어떡하나요~
주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님. 저를 어찌해야 하나요~
주님, 제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주님, 그렇게 불러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주님 앞에서 이럴 수가 있나요~
주님, 제가 주님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주님, 죄송해요. 주님, 죄송해요.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용서해주세요.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저의 깊은 열등감의 뿌리를 뽑아주시고 교만의 기둥을 불살라 주시옵소서.
주님,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의의와 회개와 화평으로 거룩한 예복을 차려 입고 천국에 입성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를 깨끗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