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오늘은 열네 번째 날 담임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 「한 번 웃어봐!」를 옮깁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
나의 순간도 나의 손짓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예닮 삶이 너무 짧은 것 같아요? 매일 예닮 삶 하면 너무 좋지 않을까요?
이번 문진은 한 주간 만 참석하여도 줄 계획입니다.
몽고에서도 왔는데 이분들은 3일만 참석하면 드리는데 몽고에 가서 예닮 삶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라는 홍보를 하기 때문에 줍니다.
내일이 주일 인데 14일 동안 모두 참석하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평강이 넘쳐나시기를 기도합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 다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는 받지 못할 자가 받는 것이고 긍휼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모두가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애통하는 일들이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좌절과 절망 중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루에 웃음도 갓난아기 일 때는 400번이나 웃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늙어서도 웃는 사람은 마음이 젊고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도다 (예레미야 31:15)
라헬이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속이고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야곱이 형의 장자 권을 빼앗았습니다.
염소를 끌고 와서 잡아서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야곱이 채색 옷을 입혀서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요셉도 팔려가기 전에 염소피를 발랐습니다.
염소를 가지고 와서 속인 것과 염소의 피를 발라 한 것이 우연이겠습니까?
야곱은 20년 동안 처가살이를 하였습니다.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여 결혼식을 올렸는데 보니 언니였다
외삼촌이 이럴 수가 있을까? 라고 하지 않고 7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애가 없어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도다 (예레미야 31:15)
이 이야기를 신약에서 예수님 탄생당시 헤롯이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죽일 때 라헬이 자식이 없어서 통곡을 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남편이 가장 사랑하였지만 위로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세월호 가족들도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2.600만원 헌금을 하고 위문 하였지만 위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할 때 예수님은 ‘너무 슬퍼하지마. 내게 네게 용기를 즐거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이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슬픔의 강
우리가 서로 슬퍼질 때
슬픔의 강에 깊이 빠지지 않도록 합시다.
슬픔의 강물에 깊이 빠져 가슴까지 차가워지기 전에
속히 강가로 나와 가슴만은 따뜻하게
지켜가도록 합시다.
- 정용철의《가슴에 남는 좋은 느낌 하나》중에서 -
* 슬픔이 강물을 이룰 때가 있습니다.
통곡하고, 통분하고, 통탄해도 모자랍니다.
그렇다고 마냥 슬픔의 강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슬픔을 안으로 깊숙이 삼키고 강가로 다시 나와
황량한 들판에 희망의 꽃씨를 뿌려야 합니다.
9. 11 사태 대 미국은 대통령이 유가족들에게 우리의 아픔이 가슴속에 오래 남아 있지 않도록 함께 일어나자고 하였습니다.
미국인들은 큰 어려움들을 많이 겪어서 헤쳐나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새로운 마음과 다짐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왜 복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아들이 없어서 통곡을 하였지만 제사장 엘리는 술취했구나 라고 판단을 하였습니다.
다윗도 사울이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왕위를 빼앗으려는 적으로 보았습니다.
<시편 89:50 주님, 주님의 종들이 받은 치욕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뭇 민족이 안겨 준 치욕이 내 가슴 속에 사무칩니다.>
그러나 사울을 숙인 자를 죽이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을 소중히 여기는 면도 있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자 슬픔에 빠져있는 과부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셨습니다.
회당장의 딸은 달리다굼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시자 일어났습니다.
‘그만 울어! 내가 너의 삶을 붙들고 있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나의 삶을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웃어봅시다.
우하하하하 해해해해해 으하하하하하
낙하산과 얼굴은 펴지 않으면 죽거나 다칩니다.
웃으면 복이 오며 웃는 얼굴에 복이 따라 옵니다.
세상에 슬픈 일이 있지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믿으면 웃고 삽시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조금 더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사랑이 물들어 갈 것입니다.
예수임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넘어졌지! 그래도 괜찮아! 네가 나와 함께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내가 다 알아!’
삶의 한절이라도 주님을 닮기 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어제 보다는 오늘이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