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23~32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무슨 권위로 일을 하냐고 묻습니다. 예수께서 요한의 세례에 대하여 되물으나 그들이 대답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들은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믿지 못하는 그들을 양육하십니다.
“어떻게 만났어요?” 하고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받는 질문입니다.
“댄스학원에서요~” “네! 진짜요?”로 시작되는 저의 간증은 ‘두 시간 걸리는데요~’해도 기꺼이 듣겠다고 하여 직장이나 어디서나 간증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몰라서~’하면서 나누다보면 울었다 웃었다 하면서 들어주다가 ‘지금 우리를 전도 하는 거 맞지요?’하면서도 끝가지 들어주십니다.
때로는 ‘결혼 두 번 했는데요?’하면 제 입을 막는 믿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댄스학원에서 댄스를 가르치게 된 것은 시집살이가 힘들어서 자살을 꿈꾸던 시절의 탈출구로서 우연히, 갑자기 시작하게 되었고, 방학을 이용해 영국으로 가서 국제자격을 딸 정도로 완전히 몰입을 했고 결국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우상이 되었습니다.
대회를 치르는 선수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실력이 늘어갔고 외모는 여전히 우울모드였지만 가르치는 자리를 옮길 때마다 따라 다니는 갤러리들이 있었다는 말도 들을 만큼 나름의 권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얻어 가진 권위로 가정이 훼파되었고, 음란과 불륜과 돈의 농락과 수없는 불법의 삶이 점철 된 죄 패가 바로 ‘댄스학원에서요~’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시작을 바꾸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국제결혼이 꿈이었다고 하시며 흥미로와 하시는 유부녀들이 많이 계시지만 제겐 뜻하지 않게 주신 자리가 되었고 내 힘으로는 어느 것 하나도 살아 낼 수 없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첫 결혼에서 시부모님으로 인해 불교 집안에서 자란 제게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알게 해주셨는데 그 자리를 헛으로 여기고 뛰쳐나와 온갖 죄로 물든 세리와 창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말씀과 공동체가 있기에 ‘싫소이다!’하고 나갔다가 돌아 온 둘째 아들처럼 살아낼 수 있는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가져서 누리는 것과 하나님이 주셔서 살아야 하는 삶은 완전히 다른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가져서 누리는 것은 잃을 것 밖에 없다는 것, 죄로 물드는 시간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땅 속까지 폭삭 망하게 된 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남편이 지나가는데 몇 몇 집사님들이 “아~ 저런 젠틀한 남자랑 일 년만 살아봤으면 좋겠다~‘ 하시니까 옆에서 세 번째 십자가(장미꽃십자가)생활을 아시는 초원님이 대신 대답해 주십니다.
“그냥 있는 남자 잘 데리고 사셔요~ 별 남편이 없다니까요!” 하십니다.^^*
이제는 제게 허락하신 포도원에서 주님이 부르실 때가지 충실히 일하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저에게 주님의 이름을 알려주신 시부모님을 원망하고 미워하느라고 대답만하고 아무 일도 안하는 큰 아들처럼 있어야 하는 자리를 떠나서 제 멋대로 살다가 지옥 갈 뻔 한 망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쌍히 여기시고 불러주신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포도원에서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충실히 일하는 둘째로 남기를 원합니다. 또 다시 배반하지 않게 하시고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오늘 말씀처럼 양육해 주셔서, 뉘우치고 언제나 꼭 주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기 원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