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6일 금요일
신명기 5:22-33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말씀하셨다. 온산이 붉게 타올랐다. 우레와 같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들었다. 빽빽한 구름 사이에서 말씀하셨다. 떨리는 가슴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들었다. 말씀을 그치시고 그 말씀을 두 돌판에 새기셨다. 당신의 마음을 새긴 것이다. 그때 흑암이 그들에게 임했다. 엄청난 광경에 그들은 압도되었다. 두려움에 그들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모세에게 중보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두 돌판에 새기실 때 모습을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표현하셨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4-16
딸내미가 아이를 출산하였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을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생의 또 다른 길에 들어선 느낌이다.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제야 고개가 끄떡여진다. 젖을 먹는 아이에게는 다른 근심이 있을 수가 없다. 완전한 의존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엄마와 하나 된 모습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평안의 극치를 보는 것이다.
어미가 젖이 불어 흐르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 반문하신다.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마음 이것이 은혜이다. 사랑의 끝판 왕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우리들의 마음에 새기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끝이 없으시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브리서 8:10
그리고 말씀을 듣는 기본자세는 언제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좌로 굽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중심을 바로 잡고 말씀을 따라 걸어갈 수 있을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진리이신 주님과 손잡고 걸어가는 것이다.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되었다. 내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하룻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