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1~11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오늘 예수님께선 인류의 구원을 위해 가시는길에 나귀를 타고 가시는 겸손과 순종의 모습으로 보이십니다.
저의 교만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저는 야동을 안보고,
회사에서 거짓말을 안하고
마음을 정결케 하려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기시리라는 기대를 갖고
회사일이 몸이 힘들어도 거짓없이 하려하고
하나님 말씀도 열심히 묵상하며
주님이 보시기에 악한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내의 부족한 점.
예수님을 믿는데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처음엔 긍휼한 마음이 들어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목사님의 구속사적인 세상의 적용에 대해
으시대고 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올라왔습니다.
이런 것을 아는 내가 뭔가 된것 같고,
제 간증을 하다보면 우쭐 대며 이야기하는
저를 보게됩니다.
마치 영적으로 내가 뭔가가 된것 같다는 교만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겸손히 이야기 해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저의 자랑질로 변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교만과 자랑은
제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고 싶은 저의 뿌리깊은 죄성입니다.
저의 가문의 저주 입니다.
사대부 가문의 조상을 갖고 있고,
양반으로 살며 살아온 가문의 저주입니다.
장원급제가 우상인 양반의 죄가,
저의 부모님과 저에게 까지 일류대학 우상으로 내려왔고, 남보다 내가 높아야 하고 우월해야 한다는, 교만의 죄성이 이렇게 불쑥 불쑥 나오곤 합니다.
내가 야동을 안보고, 술을 안마시고, 말씀 묵상을하고, 회사일에 있어 거짓으로 일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보다 내가 우월하고 높은것일까?
내가 하나님 말씀을 더 알고 적용을 잘하면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보다 영적으로 우월한 사람인가?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건강을 허락 하시고 ADHD 약을 먹게하여
회사일을 거짓 없이 일할 수 있는거고
사랑하는 아내를 허락하여,
야동을 안볼 수 있는거라 하십니다.
또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고 만나 주셔서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적용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결코, 내 능력으로, 내 힘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이 오직 주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님의 말할수 없는 탄식의 기도로 한걸음씩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며 걸어가듯 여기까지 왔는데,
이 작고 작은 먼지 같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에게 뭐가 되었다 함이 있다고 정죄하고 판단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런 죄성은 조금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계속 더럽고 추한 모습입니다.
너무나 큰 죄를 갖고 부끄럽고 더러운 모습
있는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큰 은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선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13)
라고 위로해 주십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오늘 본문처럼 선지자라 외치던 백성이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님을 픽밥하던 사울이 바울이 되어 순교한 것 처럼
훗날에 어찌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데,
저의 이런 생각들과 교만의 죄성을 어찌할까~~
애통합니다
주님의 은혜인데~
정말 가문의 저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교만의 죄성이 끊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 옆의 지체가 빨리 변했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안변할까? 라며 이렇게 조바심 내는 것이
아직 세상에 대한 인정받고 싶은 욕심과,
세상에서 누리고 싶은 것을,
내려 놓지 못하는 저의 모습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선 저를 40년동안 참아주셨는데,
저는 하루를 참지 못하고 분내는 경박한 교만의 모습의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곳에 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제가 바라보고 싶은 것을 보며 욕심과 탐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적용: 내 주제 파악을 하길 원합니다.
저의 가문의 저주인 교만이 올라올 때마다 주님이 바라보는 곳을 같이 바라보며 가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