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오늘은 열두 번째 날 담임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 「넌 너무 소중해」를 옮깁니다.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라!
<요한복음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낙하산과 얼굴은 폐지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간혹 서구화된 동양 사람도 있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매력적인 중동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동양 사람은 철학자의 얼굴로 살아갑니다.
6.25 끝난 후에 미국사람이 오면 신기하게 생겨서 구경을 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기분이 유쾌하고 상괘하게 됩니까?
옆에 계신 분을 보고 당신을(성도님)을 보니 하나님 얼굴을 뵈온 것 같습니다. 라고 해 보셔요?
두 사람이 곰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한사람이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빨리 달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 보다 빨리 달려가면 곰이 당신을 물지 않겠냐? 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상황은 신체적 장점이 6인 사람과 신체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다른 4인 사람이 있습니다.
두 번째 상황은 신체적 장점이 8인 사람과 신체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다른 10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라면 어떤 점을 택하겠습니까?
소꼬리 보다 닭대가리가 났다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남에 가서 찌질 하게 사는 것보다 수원에서 잘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6에 속하든지 4에 속하든지 판단하지 말고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예수님이 안다고 하셨는데 내가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친구와 종의 차이는 밥상에서 차려준 밥을 스스로 밥을 먹는 사람과 가져와서 먹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친구 파트너로 인정하십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비밀을 알고 있는데 너와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하십니다.
각 나라 별로 개인 별로 신용조사를 하여 신용도가 높으면 이자가 적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나 자신은 어떻게 평가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시편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수원을 시골이라고 사람들이 떠듬떠듬 알고 있지만 우리교회는 그래도 김진표 장로님, 남경필 집사님과 같은 사람이 다니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를 떠듬떠듬 알지 말고 괜찮은 교회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4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우리는 대부분 누가 나를 봐 주느냐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자의 풍요 속에 살고 있으며 조선시대 왕들보다 더 잘 먹고 삽니다.
강남에 사는 사람과 비교하면 초라하게 됩니다.
하나님 한분을 의식하고 담당하게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땅히 두려워 할 자를 알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출애굽시대에 십보라와 부아는 바로를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아일들을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서 생활을 한다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살다보면 자괴감이나 우월감으로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은 부모도 잘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청년시절에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10∽20명을 목회하는 사람은 유명한 이동원 목사님이나 김동호 목사님이 이런 곳에서는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면 이 목사님과 김 목사님이 못 서는 이곳에 내가 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조병화 해인사>
여의도 순복음 교회나 수원 중앙침례교회나 믿음은 하나 ^^^^
교인수가 많다고 십일조를 많이 거두어들인다고 주님보시기에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상대적으로 조금 나을 뿐입니다.
사회주의도 민주주의도 어느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토탈타락)하였습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60년대 말에는 북한이 우리나라 보다 더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느냐 그렇지 못하고 살게 만드느냐가 지금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자본주의는 실패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져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질시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더 나아가면 폭동을 일으키게 함으로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좌파는 평등을 강조하고 우파는 자우를 강조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면은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박애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년 전에는 종교지도자로 달라이 라마, 김삼환 목사님이 연사로 섰습니다.
김삼한 목사님에게 어떻게 성도들을 지도하시냐고 묻자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친구들을 우습게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한복음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네게 띠 띠우고 라는 말은 성령에 이끌리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마지막 품에 있는 제자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너하고 상관할 바가 아니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이 베드로의 삶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모든 삶을 드렸습니다.
돌탕 돌아온 탕자 집탕 집에 있는 탕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상족으로 주시는 것을 감사히 받지 못하는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는 집탕도 있습니다.
염소와 나귀가 있었습니다.
나귀가 칭찬을 받자 염소가 꾀를 내어서 나귀에게 짐을 실고 가다가 넘어지면 주인이 너를 더 귀하게 여길 거야라고 하였습니다.
나귀는 짐을 실고 가다가 일부러 넘어졌습니다.
그러자 수의사를 데려와서 진단을 한 결과 염소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하였답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틀을 페러다임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얻은 것에 만족하고 자신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정말로 좋은 사람입니다.
성경적 페러다임으로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며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며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처럼 그 사람 속에 숨어 있는 금광석을 발견하며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