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3일 화요일
신명기 4:41-43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
모세는 첫 번째 설교를 마치면서 도피성을 언급하고 있다. 부지중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냥 법이 아니었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님을 아셨다. 우발적 범죄 즉, 과실치사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드신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계신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이처럼 세세하게 법을 만드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세밀하게 돌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기꺼이 나의 도우미가 되시기를 자청하신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0:31-32
두려워 할일이 이 땅에 없다는 말씀이 아니다. 머리털까지 세고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말씀이시다.
말씀을 듣고 있는 장소가 모압 평지였다. 앞으로 들어가서 살아야할 땅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일일이 자세하게 가르치신다. 율법을 들으면서 이미 그들의 마음은 가나안 땅에 도착해있었을 것이다.
도피성은 레위지파 관할 하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온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도피성 밖으로 나갈 때는 그의 신변을 보장 받지 못했다. 또한 그곳에서 살 동안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는 자유인 되었다.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라.” 민수기 35:25
이러한 도피성은 예수님의 그림자였다.
도피성 안에 있을 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안에 있을 때만 원수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죄인이 대제사장의 죽음 이후로 자유를 보장 받는 것처럼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죄인에게 영구한 자유를 보장한다. 이것은 성도에게 유죄를 선고하려는 사탄에게 공소권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가슴이 뛴다.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영원한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기만 하면, 곧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 여기서 믿는 자들의 ‘들’자가 중요한다. 믿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나님 나라이다. 믿기만 하면 영원한 도피성이신 주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이 좋으신 주님과 함께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