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 20장 1-16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하루에 걸쳐서 일꾼들을 고용한 포도원
주인에 비유하십니다. 첫 번째 무리에게 포도원 주인은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다음 무리에게는 그들에게 상당하는 삯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세 번째 무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하러 가라고만 말을 합니다. 하루가 끝나갈 때쯤에
포도원 주인은 마지막에 일을 한 사람들부터 먼저 품삯을 주고 먼저 일을 한 사람들에게는
맨 나중에 품삯을 줍니다. 모두가 한 데나리온의 같은 품삯을 받자 불만이 일었고
포도원 주인은 그의 돈을 가지고 뜻대로 쓰는 것은 자신의 권리라고 말하면서 그의 선함을
시기하는 일꾼들을 꾸짖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처음 된다는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십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바로 천국의 비유인데, 마태복음 13장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을
합니다 : “천국은 이와 같으니...“
그럼 누룩의 비유, 값비싼 진주와 밭에 감추인 보화, 밀밭의 가라지
그리고 그물에 가득한 물고기와 같은 비유는 어떻게 된 걸까요?
이런 비유들이 어떻게 제가 천국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일까요?
천국에 관하여 나의 인생을 해석하는데 어떻게 더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세상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저의 판단 방식과 예수님의 방식이 다름을 보여
주십니다. 포도원 품꾼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방 여인들과 헤어져서 ‘사로잡힌 자들‘로
돌아오라는 에스라의 명령과도 흡사합니다.
(이방여인들과의) 집단적인 이혼에 대한 저의 즉각적인 반응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첫 번째로 고용된 일꾼들은 하루 종일 일한 자신들이 단지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과
똑같은 품삯을 받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매일같이 “공평하지 않아요.”라는 외침을 듣게 됩니다. 보통은 학생들의 불만이지만 가끔은
선생님들의 불만일 경우도 있습니다.
그 불만의 목소리의 핵심은 “나는 특별하다.” 의 다른 표현입니다.
아무도 평등하게 취급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원하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다보면 어떤 학생들은 빠르게 받아들이고 어떤 학생들은 시간이
걸리는 학생도 있고 아주 오래 걸리는 학생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교사로서 우리의 목표는 지식을
습득한 학생들에게 최고의 등급을 부여하는 것임을 설명할 때면 언제나
학생들은 반발을 합니다. 그들은 항상 “이것은 공평하지 않아요.” 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리고 그 불만스런 논란의 쟁점은 오늘의 본문에서처럼 언제나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일 년 만에 한 언어를 습득하는 사람이 십 년 만에 습득하는 사람보다 더 우수한 것일까요?
아무도 어느 쪽이 더 빨리 습득했고 어느 쪽이 늦게 익혔는지를 따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 쪽 다 모두 이미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나중에야 돌이킨 바울이
베드로의 앞에 서서 천국에 가는 것이 공평한 것일까요?
처음 제가 이 학교에 왔을 때, 많은 선생님들을 해고시켰고, 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도를 바꿔서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해고하기를 원했던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내쫓는 일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오늘 한 선생님에게 이와 같은 일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부분 좋은 선생님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 주시지만,
몇몇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그들은 다른 선생님들과 학부모들 중 일부를 화가 나도록
만들기도 하고 나로 하여금 그들을 해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의 교사들은 사실은 우리의 부족한 면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줌으로써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이 곳에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이 좋은 교사로 거듭나는 것을 도울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그들이 우리들에게
더 많은 연민과 인내심, 인정하는 자세와 같은 것들을 가르쳐 줌으로써 우리가 더 나은 교사와 부모로 성
장하도록 도움을 줄 가능성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문제학생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제가 지금도 느리게 배워 나가고 있는 것은 -또 시간 타령이군요-
하나님의 눈으로 삶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에 공평한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공평함에 대한
생각을 형식적으로 말하게 됩니다.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경쟁에 의한 차별이고 거짓된 표준입니다.
공정한 경쟁의 장을 원하지 않고 내 편으로 상황이 유리하게 기울기를 원합니다.
저는 돈과 성별과 인종과 건강, 언어 그리고 권력에 있어서의 불공평함을 원하고 있습니다.
특별해 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대우받지 않으면 “이것은
공평치가 못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오늘의 본문은 또 다시 저의 인본주의에 대해서 문제가 있음을 지적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선생님에게 이 내용의 대부분을 설명할 때 오늘 말씀 중의 비유를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비유의 말씀이 하루 종일 제 마음 속에 있었지만 앞에서 설명했던 저의
잘못된 사례들을 고백하면서는 정작 그 선생님에게 비유로 정확하게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특별하고자 하는 저의 욕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과 평등하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에게 하나님의 눈과 영을 허락하셔서
제가 일하는 곳으로 당신께서 부르신 자들을 섬기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