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 19장 1-12절 말씀입니다.
18장에서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큰 무리를 이끌고
요단강 동편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모든 병자들을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혼에 관한 그럴듯한 질문을 받으시고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허락한 것은 너희의 마음이 완악해서이며 행음이외의 이유로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고
대답하십니다. 제자들이 그렇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고자이거나, 태어난 이후 고자가 되었거나, 천국을 위해서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도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 말씀에 대한 나의 적용은 당신과 절대 이혼하지 않는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집사람은 너무 쉬운 적용이라고 합니다.
우리들교회의 훈련과 아내와의 결혼생활 때문에 이 적용이 너무 쉽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사실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아내가 사망하기 6개월 전에, 우리는 격앙된 가운데 심각하게 이혼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사망했고 이혼에 대한 생각은 주고받은 이야기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간음으로 시작된 그 다음 여자와의 관계에서, 형식적으로는 결혼에 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므로
이혼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여자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그녀의 말이 맞을 수 있지만 저는 다르게 느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분명
이것은 이혼이었습니다.
이 여자와의 관계의 목적은 성적인 욕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에 대해서 아주 분명한 태도를 취하십니다.
그는 핵심을 설명하기 위해서 창세기를 인용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형식적으로, 문서상으로 결혼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결혼 예식을 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관계가 첫 번째 결혼이었고 그들이 성적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그것은 결혼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24)
이것이 왜 순결이 중요한가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첫 결혼 전후에 다른 여자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습니다.
현재의 결혼생활 중에는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충실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전에 가졌던 육체적인 혼외관계 때문에 힘이 듭니다.
그것은 성적인 부도덕함이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 저는 이혼했거나 이혼 당한 여자와 (정신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만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이 나눌 수 없고 나누어서도 안 되는 육체적인 결합에
관해서 말씀하고 게십니다. 이혼은 안 됩니다.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성적으로 충실하다는 사실은 하나님에게 집중하며 내 안의 욕망과
내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나를 노리고 있는 세상의 흔한 성적 유혹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도
도움을 줍니다.
육체적인 결합은 삼위일체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을 창조했습니다.
남자에게 여자가 더해진 것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결합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결합의 영이었습니다.
그들이 오직 함께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에 대해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를 여러 차례
어긴 것이 심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죄인
제 마음의 완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육신의 사망과 부활 이후에, 천국에서 하나님의 고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성적으로 부도덕했던 저의 죄와 마음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게 허락된 날 끝까지
충실한 남편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 주옵시고 이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