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9일 금요일
신명기 4:15-24
“하나님의 짝사랑”
손자를 키우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다. 오늘이 아이가 태어난 지 꼭 90일이 되는 날이다. 지난 3개월이 꿈처럼 흘러갔다. 처음 세상에서 아이를 만나던 날, 사위를 꼭 빼다 닮은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기준이 하나님의 형상이었다는 말씀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喜怒哀樂(희로애락)이 아이의 표정 속에 나타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어쩌다 방긋 웃는 아이를 따라 온 가족이 웃음바다가 된다. 아이의 웃음 속에서 핏줄이 땡기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는 일이라고는 젖 먹는 일, 그리고 잠자는 것, 배설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 짝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바라보실 때도 똑같은 마음이라 생각된다. 우리들의 삶이 부족하고 때로는 허물투성이지만 예수의 피로 사셨기에 예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께서 대면하시는 날, 얼굴을 감추셨다. 온 산이 불타오르는 현장에서 십계명을 주셨다. 빽빽한 구름과 흑암 속에서 온 산이 붉게 타올랐다. 말씀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은 자들이었다.
그날 기억할 것을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두 돌판에 새겨진 첫 계명을 모세는 다시 강조하며 설교를 시작하고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감추신 것일까?
그 단서가 바로 ‘너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는 말씀 속에 있다. 우상을 만드는 시작이 부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깊이 삼가라고 하셨다. 무조건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왜 우상을 금하셨는지 그 근본 이유를 알아야만 너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상을 버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다.
그렇다! 모든 부패의 시작은 하나님을 위한 자리에서 내려와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형상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슴에 새겨진 우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네 이웃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낮은 곳에 있는 형제를 보라고 하셨다. 그 얼굴 속에서 나를 보라고 하신다.
사람들의 얼굴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우리가 새겨야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거시고 나를 위하여 베팅을 하셨다. 십자가였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질투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신명기 4:24
하나님의 짝사랑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