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7:6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스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니
왕에게 구하는 모든 것을 다 받을 정도로 유력자였던 에스라가 왜 그 좋은 환경을 뒤로하고 쉽지 않아 보이는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택했는지 저절로 묵상이 됩니다. 본문을 보면 에스라가 바벨론의 여유로운 생활에 도취되어 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했다는 에스라… 그렇게 계속 바벨론에 살아도 누가 뭐랄 사람 없었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하니 답이 보입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는 에스라의 영적 민감성 때문에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에스라가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했다는 구절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확 생깁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는 삶이 선행되어야 가르칠 수도 있겠습니다. 꼭 문자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더라도 삶으로 보여지는 것이 있겠습니다. 보는 말씀, 듣는 말씀이 적용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나의 욕심이 그것을 제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늘 은혜를 부어주고 계실 텐데, 그 도우심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그것은 다 나의 욕심 때문이겠습니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뒤로하고 예루살렘행을 택한 에스라는 여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잘 되는 일에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고된 여정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은 계속 됩니다. 말씀만 붙잡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이 있음을 에스라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에스라처럼 말씀에 정통하기까지는 못하더라도 말씀을 진정 사모하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큐티할 때 말씀을 눈으로만 읽지 않고 입으로도 읽겠습니다.
큐티 앞뒤에 말씀을 두고 꼭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