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마11:7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나 마라톤 4일 째를 치르고 있는데
어제 게릴라 성 호우가 주변을 깔끔하게 청소해 놓아서
햇빛 촌의 유리창엔 비처럼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겨우 삼일을 넘겼을 뿐인데도 몸이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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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째 인타 발을 끌던 조 아무개가 마지막 까지 저를 실망
시키면서 제가 심기가 불편해졌고 그 동안 장난질 당한
생각을 하니 사기 맞는 것처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기야 내가 휘둘린 것은 “혹시나” 하는 욕심이 때문이었고
일향 미쁘신 하나님이 “역시나‘ 로 응답해주셨는데 왜 기분이
엿 같은지 그냥 땅만 보고 달렸습니다. 한 40분쯤 달렸을 때
내장이 데 펴지는지 뜨거운 김이 속에서 밖으로 분출되었습니다.
온갖 더러운 찌끼들과 지방 질 그리고 화들이 한 바가지나
배출한 느낌이 듭니다. 커뮤니티에 와보니 내일부터 5일 까지
휴가랍니다. 벤치 프레스 5회 버터플라이 5회 바벨 5회를
하고서 잔 근육을 만들려면 아령을 해야겠다고 생각만 했습니다.
사우나 실이 한산 합니다. 깨끗한 탕에 몸 한 번 호강 시켜주고
버스 정유 장까지 걸어 나왔습니다. 기분이 상쾌해진 느낌입니다.
8시 30분인데도 차들이 움직이지 않았고 마트도 조용합니다.
오늘은 물 좋은 갑오징어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어야겠습니다.
한국문학사에서 근대문학의 기점을 어디로부터 어떻게 설정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문학 연구가 시작된 이래 줄기차게 지속되어
온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골치 아픈 애기는 잘 모르겠고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정하는데 있어서 조선의
건국이나 갑오경장이 그 분수령이 됩니다. 제가 공부할 땐 갑오경장
이전을 고전문학으로 갑오경장 이후를 현대문학으로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주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하여 인 사이트를 해주셨는데 세례요한을
문학사별로 구별한다면 갑오경장 이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선지자들 중에서 제일 큰 자일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 중에서
제일 큰 자라고 선언한 것도 요한이 구약의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나라의
전령역할을 한 선지자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옛 시대에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것입니다.
a.세례요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7-9
b.하나님나라의 전령 세례요한:10
c.옛 시대와 새 시대의 분기점:11
d.공격당하는 하나님나라:12
e.세례요한에 대한 결여:13-15
세례요한과 예수에 대한 반응(16-19)
a.거부하는 것에 대한 탄식:16-17
b.세례요한과 예수에 대한 거부:18-19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나라는 더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것이고
나는 지금 임한 천국에 열정이 있는가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현존하기 시작한 하나님나라는 이미 침노하였나니
더 이상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구시대적, 비본질적 외침이 아닙니까,
천국은 죽어서나 가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들을 귀 있는 자만 들을 수
있는 통치적 개념이니 주의 나라가 임하는 자가 복된 자 일 것입니다.
혹시,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힌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닙니까,
울지도, 춤추지도 않는 세대여, 응답하라!
천국을 몰고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대의 불합리성이 천국 전령 세례요한에게 금욕주의라는 비난으로,
술주정뱅이라며 예수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으로 들어났지만,
이미 임한 그 나라가 누룩처럼 부풀며 전진하고 있사오니 나는
그 분의 통치에 순종하는 참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땅의
교회가 새 술을 새 가죽 부대에 담을줄 아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2014.8.1.fri.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