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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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7일(화) 큐티(느헤미야 6:1~14)
[내 손을 힘 있게 하소서]
오늘 큐티 말씀에서 내 위치(분수)를 알 때, 어떠한 압력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위축되지 않을(당당할) 때와 원칙에 충실할(유혹에 빠지지 않을) 때 음모와 모함으로부터 해코지 당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음모에 빠지는 것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알지 못하고 명예와 권세와 돈과 쾌락의 초청과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에서 느헤미야가 산발락과 도비야와 게셈의 거절하기 어려운 만남의 제안(느 6:2)과 모반이라는 위협(느 6:6~7)에도 위축되지 않은 근거는,
1) 내 위치 알고 내 사명을 감당하고자(느6:3) ‘내 손을 힘 있게 하소서’(Now strengthen my hands/느 6:9)라는 기도와,
2) 모함 자들의 모략에 넘어가지 않는 분별력(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you are just making it up out of your head./느 6:8)과,
3) 뇌물로 매수되어 조작된 스마야(Shemaiah)의 예언(느 6:10~13)에도 원칙에 충실하여 자신의 신분과 주제를 넘지 않는 느헤미야의 통찰력이 아닐까 묵상합니다.
사회에서 잘 나갈 때 억울하게 음모를 받거나 모함과 비방과 중상모략을 받을 때를 뒤돌아 보고 묵상합니다.
말씀 듣고 읽고 사모하며 묵상해 볼 때 그 당시 내가 잘난 척 할 때나 자랑하거나 돋보이고자 일을 할 때나 뭐든지 그 분야에서 특출 나게 잘할 때나 세상적으로 관심과 조명을 받을 때나 인정 받아 잘 나갈 때 쳐들어 왔음이 체휼됩니다.
깨닫고 겸손 하라고 주신 경고의 표징(sign)을 모른 채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하며 자살까지 생각했던 주님 영접하기 전 과거 내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몽매함을 오늘에서야 비로서 주님께 회개합니다.
보석 같은 말씀으로 내 죄 보게 하시니 모든 것이 내 삶의 결론임이 깨달아 지고 내 죄 봄으로 카타르시스가 되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 주님 말씀의 뜻을 알고 적용하기를 원하면서 주님께 감사 드리고 경배 드리고 찬양 바칩니다.
음모와 중상모략을 받는근거를 살펴 볼 때 다름 아닌 내 욕심과 탐욕이 그 씨앗임을 알기를 원합니다.
죽기까지 낮아지고 겸손하여 양보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해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다 내가 잘나고 내가 똑똑해서 승승장구하는 것이고 내가 총명한 결과라고 생각되면서 의기양양해 지고 내가 하나님자리에 냉큼 올라 앉게 되다 보니 시기질투와 모함이 당연히 뒤따라오게 되는 당연한 자업자득이고 내 삶의 결론임이 깨달아집니다.
내 위치를 지키는 것이란 내 분수 지키고 내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고,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다는 것은 내 안의 숨겨진 죄와 숨은 부끄러움으로 인한 내적 열등감과 주변 환경으로 인한 두려움과 억눌림이 없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이것은 원칙에 충실할 때 가능한 것임을 알기를 원합니다.
혈기 부림은 내적 교만과 이기심과 생색이 용암(마그마)처럼 분출되는 것인데 ‘혈기부리고 있다’라는 것은 아직 ‘나는교만한 사람이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는 잘난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억울하다’, ‘나는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다’, ‘내가 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야 되나?’’난 잘난 사람이다’, ‘난 잘났으니 건들이지 마’를 직간접적으로 표출하는 수치스럽고 가증스럽고 부끄러운 장면임을 알고 혈기 부리는 망령된 행동을 그치기를 원합니다. 건드리고 툭치면 혈기가 나오는 내 죄를 보고 회개하오니 주님 불쌍히 여기시어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목사님께서 ‘혈기를 내려 놓는 것이 이 시대에 십자가 지는 것’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다가오는 화요일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