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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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통한하지 않느냐 / 고린도전서 5:1-13
죄를 보고 통안하려면
첫째, 죄의 무감각한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1절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심각한 음행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방인들조차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 것이지요.그런데 2절에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라고 책망하는 대목이 더 놀랍습니다. 음행의 죄도 심각하지만 그 죄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공동체의 태도가 더 큰 문제였던 것이죠.
고린도 교회는 은사도 많고 지식도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많이 배우고도 정작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사랑이 아닌 교만이라고 단언합니다. 죄인은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죄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는 않으셨지만 동시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죄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까지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음란과 탐욕의 사건을 보면서 처음에는 놀라지만 자꾸 접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불륜을 미화해도 별 문제 없이 보고 주변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도 성공했다며 부러워합니다. 그리곤 '세상이 다 그렇지' 하며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죄에 무감각해진 모습입니다.
더 두려운 것은 다른 사람의 죄는 잘 보면서 내 안에 있는 같은 죄성은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음행은 정죄하면서 내 마음의 음욕은 괜찮다 생각하고 남의 탐욕은 비난하면서 나의 돈 욕심은 합리화하지요. 그렇게 어떤 사건을 보더라도 먼저 내게 주시는 경고로 받아야 합니다.
3절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앞장에서 바울은 판단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왜 판단합니까? 사람의 중심과 구원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과 공동체 안에 드러난 죄를 분별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분별하고 권면하는 것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4절과 5절에서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그 사람을 사탄에게 내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죄를 고집하는 사람을 교회의 교재에서 분리하는 엄중한 권증을 뜻하지요. 그런데 그 목적이 무엇이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참된 사랑은 무조건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필요할 때는 아픈 권면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죄를 보고도 다 그런 거지 하며 무감각하게 넘어가고 있지는 않나요?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기보다 내 안에 있는 같은 죄성을 보고 통안하고 있습니까?
둘째, 묵은 누룩을 버리고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6절에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룩은 아주 조금만 있어도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지요.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타협처럼 보이지만 그대로 두면 결국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그래서 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여기서 묵은 누룩이란 '우리가 버리지 못한 오래된 죄와 세상 가치관'을 뜻합니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습관이고, 때로는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에 잘 버리지 못합니다.그런데 바울은 이어서 6절 후반부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이스라엘이 유월절에 누룩을 제거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죄를 버리고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는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신앙생활은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말씀 앞에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공동체는 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죄를 숨기지 않고 회개하며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입니다.
9절부터는 바울이 앞서 보낸 편지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했더니 세상 사람들과 아예 관계를 끊으라는 뜻으로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10절에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학교에서 공부도 같이 하고, 직장에서 일도 함께 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며 복음을 전하는 게 더 중요하지요. 다만 그들의 죄에 동조하거나 세상 가치관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11절에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죄를 가볍게 여기면 결국 다른 지체들까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12절과 13절에 보니 교회 밖 사람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죄는 공동체가 분별해야 한다고 합니다. 충분한 권면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되, 끝까지 죄를 고집한다면 공동체의 거룩을 위해 책임 있게 다루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의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기에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적용
오래도록 버리지 못한 채 품고 있는 나의 묵은 누룩은 무엇입니까?지체의 죄를 무조건 덮어주거나 정죄하기보다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사랑으로 권면하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죄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나 죄를 미워한다는 이유로 죄인까지 미워해서도 안 됩니다.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주셨음을 기억하며 우리 안에 묵은 누룩을 버리고 죄인을 사랑하되 죄와는 타협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죄를 보고도 무감각하게 넘어가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덮어두려 한 저희의 교만을 고백합니다. 남의 죄를 정죄하기 전에 우리 안에 있는 음란과 탐욕과 미움의 누룩을 먼저 보길 원합니다. 우리를 위해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함으로 묵은 누룩을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공동체 안에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되, 정죄가 아닌 구원을 위해 사랑으로 권면하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