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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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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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9 오늘 큐티본문을 묵상하며 먼저 고린도전서가 왜? 기록되었고 왜? 성령의 감동으로 남겨져 우리에게 전해지는지? 그 이유를 알고 오늘 말씀을 묵상하려한다. 고린도는 당시 그리스 지역의 중요한 상업도시였다.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오가며 무역했고, 부와 사회적 지위, 다양한 종교와 철학이 공존했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고 사도행전 18장에 그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 안에도 여러 문제가 생겼다. 그것을 정리해보면, 1)분열과 파벌: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고 주장하며 분열되고 파벌형성 (고전 1:10~13). 2)성적 부도덕: 교회 안에서 심각한 성적 죄를 용인하는 일이 있었다(5장). 3)성도 간의 다툼: 서로 고소하며 세상 법정으로 나아갔다(6장). 4)결혼과 독신의 문제: 결혼생활과 성에 관한 혼란이 있었다(7장). 5)우상에게 바친 음식과 자유의 문제: 자신의 자유와 다른 성도의 양심이 충돌했다(8~10장). 6)예배와 은사의 혼란: 성만찬과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일에서도 문제가 있었다(11~14장). 7)부활에 대한 의문: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15장).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울은 문제 많은 교회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복음의 진리로 바로잡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교회로 세우고자 했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으니 어찌 이말씀을 듣고 묵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도바울이 누구인가? 예수를 핍박하던 자가 예수를 만나고 변하여 주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순간 나에게도 사도바울과 같이 주께서 날 찾아오시고 날 부르셨다. 내가 어찌 예수를 선택하고 내가 스스로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문제를 보고 이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난 어려셔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때는 '낙엽'이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써서 최고의 상을 받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중학생이 쓴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은사를 어려서부터 주신 것이다. 우리 담임목사님의 저서 역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김양재목사님의 저서를 통해 우리들교회로 불러 주시고 그들의 문제가 해결 받는 간증과 고백을 많이 들었다. 그렇다. 바울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교회를 향해 야단과 질책과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1절에 이렇게 기록하며 서두를 시작한다. 그리고 4절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절은 고린도교회성도를 칭찬한다. 그러나 그 칭찬의 근거는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심(아포칼립시스)을 기다림이라고 기록한다. 결국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주께서 하실 것이다.라고 한다. 카리스마는 해석하면 "은사"이다. 난 카리스마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도 그런 말을 들을 것이다. 그 카리스마가 은사이다. 내가 만들고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오늘 말씀으로 난 내가 대단하여 카리스마가 있고 내가 대단하여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알고 문제위에 문제의식없이 신앙생활을 한 것이 보였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나였음을 잊고 분쟁의 자리에 있었다. 오늘도 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자로 서있는가? 오늘 친구랑 같이 병원영업을 하러 간다. 로봇의료기기영업이다. 항문외과 진료를 보고 영업하는 자리에 간다. 그 병원은 나하고 형동생하는 사이이다. 물론 영업이 잘 되어 판매되면 돈도 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영업이 더 우선 될까 걱정이 된다. 난 그런데 그렇게 판매가 되고 안되고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하는 수준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내가 무엇을 결정하고 내가 하는 것이 있다. 먼저 어떤 일을 하던 어떤 생각을 하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성도임을 기억하라는 오늘 말씀인 것 같다. 그럴 때 겸손해지고 내가 앞서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심(아포칼립시스)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타나고 내가 최고이며 내 이름이 기억되고 내가 인정을 받아야 했었다.그런 날 낮아지게 하시니 이제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성도임을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시고 은사를 주시며 은혜로 함께 하심을 인정하게 된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고린도교회와 같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을 잊어버린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먼저 이렇게 인사를 시작한다. 오늘 나에게 고린도전서를 통해 나에게 찾아오신 주님이 바울을 통해 잊어버렸던 날 보게 하시고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하다. 오늘도 날 부르신 주의 은혜를 감사하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도한다. 적용) 의료기기 영업하는 자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기억하고 일을 하겠습니다. 병원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겠습니다.